본문 바로가기

쉼표의 서재

오늘을 남기는 사람: 기록 · 언어 · AI · 콘텐츠


마님과 마당쇠의 영어 한마당

마님과 마당쇠가 벌이는 영어 한마당 · 제1화```대문 밖에서 영어가 찾아왔다

글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작은 연구실의 쉼표 입니다.

글쓰기와 기록, 그리고 글로 살아가는 구조를 함께 씁니다. 감정을 흘려보내지 않고 문장으로 붙잡아 오래 남는 글을 씁니다.

영어를 들으면 숨던 마당쇠가 처음으로 세상에 말을 건넨 날

```

초여름 한옥 마당에서 빗자루를 든 마당쇠가 외국 손님의 방문에 놀라고, 대청마루의 마님이 책을 든 채 미소 짓는 로맨틱 사극 영어 드라마 장면
영어는 대문을 두드렸고, 마당쇠는 빗자루부터 놓칠 뻔했다. 마님만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

개항의 소문이 한양 장터까지 흘러들던 어느 초여름이었다.

마님은 대청마루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고, 마당쇠는 마당 한가운데에서 빗자루를 들고 서 있었다.

마당에 떨어진 낙엽은 겨우 세 장이었다.

그런데 마당쇠는 아침부터 같은 자리만 열두 번째 쓸고 있었다.

마님이 책장을 넘기며 무심히 불렀다.

“마당쇠야.”

“예, 마님!”

“그 낙엽이 네게 원수라도 졌느냐?”

“아니옵니다.”

“그런데 어찌 한나절 내내 그 세 장만 쓸고 있느냐?”

마당쇠는 빗자루를 양손으로 꼭 쥐었다.

“바람이 자꾸 마님 계신 쪽으로 불어오기에…….”

마님이 책에서 눈을 들었다.

“바람이 불면 낙엽을 쓸어야지. 어찌 나를 보고 있느냐?”

“소인은 낙엽을 보고 있었사옵니다.”

“낙엽이 내 얼굴에 붙어 있더냐?”

마당쇠의 귀가 잘 익은 홍시처럼 붉어졌다.

마님은 다시 책으로 시선을 내렸다.

그가 자신을 바라보는 이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다만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저 사내가 제 마음 하나 제대로 말하지 못하면서, 어찌 한 사람의 곁에 평생 서겠는가.

마님은 모르는 척 책장을 한 장 더 넘겼다.

바로 그때였다.

쿵, 쿵, 쿵.

대문 밖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Hello? Is anyone home?”

안녕하세요? 집에 누구 계십니까?

마당쇠가 들고 있던 빗자루를 떨어뜨렸다.

영어였다.

뜻을 알아듣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예전에 장터에서 서양 상인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때 머릿속으로는 인사말을 알고 있었지만, 사람들의 시선이 몰리자 입술이 굳어 한마디도 꺼내지 못했다.

누군가 뒤에서 웃었다.

그날 이후 마당쇠는 낯선 말을 들으면 귀보다 입이 먼저 숨었다.

마님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마당쇠야.”

“예, 마님.”

대답은 했지만 목소리가 반으로 줄어 있었다.

“방금 대문 밖에서 누가 뭐라고 하였느냐?”

마당쇠는 잠시 생각하는 척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소인이 듣기에는…… 헬로라는 자가 집에 있느냐고 묻는 듯하옵니다.”

“헬로가 누구냐?”

“서양에서 온 사람 이름이 아니겠사옵니까?”

마님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웃음이 밖으로 달아나지 못하도록 붙잡는 얼굴이었다.

“헬로는 사람 이름이 아니라 인사말이니라.”

“예, 마님! 소인도 방금 그리 생각하던 참이옵니다.”

“방금은 사람 이름이라 하지 않았느냐?”

“소인의 생각이 바람보다 빠르게 바뀌었사옵니다.”

대문 밖에서 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Excuse me! Can you help me?”

실례합니다! 저를 도와주실 수 있습니까?

마당쇠가 마님 곁으로 슬그머니 한 걸음 다가왔다.

“마님, 아무래도 저자가 소인을 잡아가려는 것 같사옵니다.”

“도와달라는 말이니라.”

“소인을 잡아가는 일을 도와달라는 뜻은 아니옵니까?”

마님이 결국 소리 내어 웃었다.

마당쇠는 외국인의 말보다 마님의 웃음소리에 더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마당쇠야, 대문을 열어주거라.”

“예, 마님!”

그는 대문 앞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빗장을 잡은 채 한참 동안 꼼짝하지 않았다.

다시 마님에게 돌아온 마당쇠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마님.”

“또 무엇이냐?”

“대문을 열고 무엇이라 말해야 하옵니까?”

마님은 책을 덮었다.

그리고 마당쇠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오늘부터 네 입을 열 것이니라.”

“소인의 입은 이미 열려 있사옵니다.”

“밥을 먹을 때만 열리는 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 어느 때 열어야 하옵니까?”

“네가 하고 싶은 말을 해야 할 때.”

마당쇠는 잠시 마님을 바라보았다.

하고 싶은 말이라면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영어보다 훨씬 어려운 말이었다.

마님이 천천히 문장을 들려주었다.

``````

마당쇠가 처음 대령한 영어

Hello. How can I help you?

헬로우. 하우 캐나이 헬프 유?

HellohowcanIhelpyou

안녕하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쉼표의 호흡 팁
How / can I / help you?로 끊지 말고,
하우 캐나이 / 헬프 유처럼 앞부분을 한 호흡으로 이어 말한다.
완벽하게 발음하려고 입을 붙잡지 말 것. 먼저 뜻을 보내고, 발음은 그 뒤를 따라오게 한다.

``````

마당쇠는 입안에서 문장을 몇 번 굴렸다.

“헬로우. 하우 캔 아이…….”

“그리 토막 내지 말거라. ‘How can I’를 붙여 말해 보거라.”

“하우 캐나이.”

“옳지. 다시.”

마당쇠는 대문을 바라보았다.

또 누군가 웃으면 어쩌나 싶었다.

틀린 말을 하면 마님까지 부끄러워지는 것은 아닐까 두려웠다.

그러자 마님이 말했다.

“마당쇠야.”

“예, 마님.”

“틀려도 좋으니 뜻부터 전하거라.”

마당쇠는 빗장을 잡았다.

영어가 두려운 마음은 여전했다.

하지만 마님이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이 그 두려움보다 조금 더 컸다.

대문이 천천히 열렸다.

커다란 가방을 든 외국인 사내가 땀을 닦으며 서 있었다.

마당쇠는 숨을 반쯤 들이마셨다.

그리고 말했다.

“Hello. How can I help you?”

한옥 대문 앞에서 긴장한 마당쇠가 외국 손님에게 처음으로 영어 인사를 건네고, 대청마루의 마님이 대견한 미소로 지켜보는 장면
영어는 틀리지 않았고, 마당쇠의 심장만 잠시 문법을 잊었다.

 

외국인 사내가 환하게 웃었다.

“Thank goodness! I’m looking for this place.”

마당쇠는 영어 문장 전체를 알아듣지는 못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알았다.

자신의 말이 대문을 넘어 낯선 사람에게 닿았다는 것.

방금 전까지 머릿속에 갇혀 있던 문장이 세상 밖으로 나가 누군가의 표정을 바꾸었다는 것.

마당쇠는 천천히 마님을 돌아보았다.

“마님.”

“말하거라.”

“소인의 영어가…… 통하였사옵니까?”

마님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하였다.”

“영어란 녀석, 생각보다 순한 놈이옵니다.”

“방금 전까지 대문 뒤에 숨으려던 자가 누구더냐?”

“그자는 한 문장 전의 마당쇠이옵니다.”

마님의 입가에 다시 웃음이 번졌다.

외국인 사내는 손에 든 종이를 마당쇠에게 내밀었다.

마당쇠는 종이를 위아래로 뒤집어 살펴보았다.

“마님!”

“왜 그러느냐?”

“이자가 종이에 지렁이를 잔뜩 그려왔사옵니다.”

종이에는 영어로 된 주소가 적혀 있었다.

외국인 사내가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

``````

I think I’m lost.

아이 띵카임 로스트

IthinkImlost

길을 잃은 것 같습니다.

``````

마님이 말했다.

“길을 잃었다는구나.”

마당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옵니다. 소인을 잃어버린 것은 아니었사옵니다.”

마님은 종이에 적힌 주소를 살펴보았다.

외국인이 찾는 곳은 이 집이 아니라 마을 건너편 약방이었다.

“마당쇠야, 약방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거라.”

마당쇠의 얼굴이 다시 굳었다.

“소인은 약방으로 가는 길은 알지만, 영어로 가는 길은 모르옵니다.”

“어려운 말을 찾지 말거라. 네가 아는 쉬운 말부터 꺼내면 된다.”

``````

길을 알려줄 때 쓰는 세 마디

Go straight.

고우 스트레잇

Gostraight

곧장 가십시오.

Turn left.

 레프트

Turnleft

왼쪽으로 도십시오.

It’s near the market.

잇츠 니어 더 마켓

Itsnearthemarket

시장 근처에 있습니다.

``````

마당쇠는 손짓까지 곁들여 말했다.

“Go straight. Turn left. It’s near the market.”

곧장 가다가 왼쪽으로 도십시오. 시장 근처에 있습니다.

외국인은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Thank you very much.”

마당쇠는 이번에는 마님을 돌아보지 않았다.

아는 말을 스스로 골라 대답했다.

“You’re welcome.”

외국인이 길을 떠난 뒤에도 마당쇠는 한동안 열린 대문 앞에 서 있었다.

마님이 물었다.

“왜 대문을 닫지 않느냐?”

마당쇠가 천천히 돌아섰다.

“마님.”

“말하거라.”

“소인이 방금 외국인과 말을 나눈 것이 맞사옵니까?”

“그렇다.”

“소인의 말이 저 사람의 귀까지 갔사옵니까?”

“그렇다.”

마당쇠는 자기 입술을 손으로 만져보았다.

“소인에게도 세상과 말을 나눌 입이 있었사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마님의 표정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오래전부터 기다려온 말이었기 때문이다.

마님은 알고 있었다.

마당쇠가 배운 것이 없어 마당을 쓸고 있을 뿐, 생각까지 낮은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남들 앞에서 말하지 못했을 뿐, 누구보다 깊게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리고 언젠가는 이 마당이 아니라 더 넓은 곳에서 자기 이름으로 서야 할 사람이라는 것을.

“마당쇠야.”

“예, 마님!”

“오늘부터 매일 영어 한 문장씩 익히거라.”

“매일 말이옵니까?”

“그렇다.”

“소인이 그 많은 영어를 어디에 쓰겠사옵니까?”

마님은 다시 책을 펼쳤다.

“대문 밖으로 나갈 일이 생길 것이니라.”

“소인은 마님 곁이면 족하옵니다.”

마님의 손가락이 책장 위에서 잠시 멈추었다.

그러나 이내 아무렇지 않은 듯 다음 장을 넘겼다.

“그러니 더욱 배워야 한다.”

마당쇠는 그 말의 뜻을 알지 못했다.

그저 마님이 시키는 일이니 열심히 해보겠다고 생각했다.

“예, 마님! 아는 말부터 대령하겠사옵니다.”

그날 저녁이었다.

마당쇠가 대문을 닫으려는 순간, 문틈 아래로 작은 봉투 하나가 미끄러져 들어왔다.

봉투 앞에는 영어로 짧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저녁빛이 비치는 한옥 대문 앞에서 마당쇠가 마님에게 온 영어 편지를 등 뒤로 숨기고, 대청마루의 마님이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장면
영어는 이제 두렵지 않았지만, 마님께 온 영어 편지는 몹시 두려웠다.

For the lady of this house.

이 집의 마님께

마당쇠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마님께 드리는 서찰…….”

그는 봉투를 들고 한참 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방 안에서 마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당쇠야, 대문을 닫았느냐?”

마당쇠는 황급히 봉투를 등 뒤로 숨겼다.

“예, 마님!”

하지만 그날 처음으로,

마당쇠의 “예, 마님”은 조금 늦게 나왔다.

그는 아직 알지 못했다.

그날 대문 밖으로 내보낸 영어 한마디가 훗날 자신을 마당에서 시험장으로, 시험장에서 궁궐까지 데려가리라는 것을.

그리고 자신을 마당쇠가 아닌, 한 사람의 이름으로 세우기 위해 마님이 오래전부터 조용히 길을 만들고 있었다는 것을.

```


```

다음 이야기

제2화. 마님께 온 영어 서찰

마님께 배달된 정체불명의 편지 한 통.
영어를 읽지 못하는 마당쇠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영어가 미워지기 시작한다.

마님: 마당쇠야, 내게 온 서찰을 보지 못했느냐?

마당쇠: 예, 마님. 보지 못하였사옵니다. 영어도 소인도 아무것도 보지 못하였사옵니다.

``````

오늘 마당쇠가 대령한 영어

Hello. How can I help you?
안녕하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I think I’m lost.
길을 잃은 것 같습니다.

Go straight.
곧장 가십시오.

Turn left.
왼쪽으로 도십시오.

It’s near the market.
시장 근처에 있습니다.

You’re welcome.
천만에요.

```

마님: 영어가 두려우냐?

마당쇠: 예, 마님. 그러나 평생 말하지 못하고 사는 것이 더 두렵사옵니다.

마님: 그렇다면 틀려도 좋으니, 아는 말부터 꺼내거라.

… 쉼표 JEONGSEON


#영어공부 #늦깎이영어 #영어초보 #영어말문트기 #생활영어 #영어회화 #사극드라마 #로맨틱사극 #마님과마당쇠 #영어한마당 #하루한문장 #쉼표의언어쉼터 #쉼표의서재 #쉼표JEONGSEON #쉼표

쉼표의 서재, 다음 문으로

브런치·뉴스레터·네이버 블로그까지, 쉼표의 모든 공간을 한곳에서 만나요.

쉼표의 모든 공간 둘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