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쉼표의 서재

오늘을 아끼는 사람: 절약 · 재테크 · 생활정보 · 베트남


일상 & 브랜드 소식

담벼락 아래 피어난 보라꽃의 향기

글로, 정보로 더 나은 하루를 만드는 쉼표의 서재입니다.

알아두면 도움이 되는 생활 정보와 절약 노하우를 차곡차곡 모아갑니다. 하루하루를 조금 더 지혜롭게, 함께 채워가는 공간입니다.

 

그 꽃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앞에서 오래도록 서 있었다.


출근길에 매일 지나던 골목이었다. 늘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치던 담벼락 앞에서, 그날은 이상하게 발이 멈췄다.

금이 가고 페인트가 벗겨진 오래된 담벼락. 누군가 일부러 손을 댄 적도, 관심을 준 흔적도 없는 자리였다.

그 아래에 보랏빛 작은 꽃이 한 송이 피어 있었다.

누가 심은 것도 아닌, 마치 스스로 이곳을 선택한 것처럼 조용하고 단단하게.


향기는 아주 희미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희미해서 더 또렷하게 기억을 끌어올렸다.

다 잊었다고 믿었던 어느 봄날의 냄새. 그날, 그녀가 남기고 간 마지막 인사처럼.


기억의 틈

왜 하필 그 자리였을까. 왜 하필 그날이었을까.

그녀와의 마지막 대화도, 마지막 눈빛도 흐릿해졌는데 담벼락 아래에서 흘리던 그녀의 눈물만은 선명하게 떠올랐다.

울지 않으려 애쓰던 얼굴.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나.

지금에 와서야 생각한다. 그날 내가 가장 미워했던 건 그녀가 아니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나 자신이었는지도 모른다.


“행복해져.”

그 말을 남기고 돌아섰던 그녀를 나는 오래도록 미워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 말이 결국 나를 위한 말이었다는 걸 조금 늦게 깨달았다.

나 역시 그녀가 행복하길 바랐다는 사실도.


보라꽃 향기 속에서

보라꽃 앞에 잠시 주저앉았다. 지나가던 바람이 머리칼을 스쳤고, 담벼락 그림자 아래로 햇살이 조용히 맺혔다.

그 향기 속에서 그녀가 웃고 있는 모습을 그려봤다.

아마 지금쯤, 정말로 평온한 얼굴이었을 것이다.


피어나는 순간

꽃을 따지 않았다. 사진을 찍지도, SNS에 올리지도 않았다.

그저 그 자리에 그대로 두고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 향기가 그 자리에 오래 머물기를 바라며.

누군가 또 지나치다가 그 향기 속에서 자기만의 기억을 피워낼 수 있기를 바라며.


그녀가 떠난 이후, 처음으로 나는 마음속으로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잘 지내지?” “나도 이제 괜찮아.” “그리고… 고마워.”


그리고 나는 오늘도 출근길 담벼락 앞에서 조용히 걸음을 멈춘다.

그 자리에 아직 보라꽃의 향기가 남아 있는 것 같아서. 아마, 나만 그런 건 아닐 것이다.


이 글은 쉼표의 단편소설 연재 중 1화입니다. 다음 이야기도 천천히 이어가겠습니다.

#감성에세이 #단편소설 #보라꽃 #기억의 조각 #도시의 틈 #작은 쉼표

쉼표의 서재, 다음 문으로

브런치·뉴스레터·네이버 블로그까지, 쉼표의 모든 공간을 한곳에서 만나요.

쉼표의 모든 공간 둘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