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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표의 서재

오늘을 남기는 사람: 기록 · 언어 · AI · 콘텐츠


마님과 마당쇠의 영어 한마당

마님과 마당쇠가 벌이는 영어 한마당 · 제2화``` 마님께 온 영어 서찰

글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작은 연구실의 쉼표 입니다.

글쓰기와 기록, 그리고 글로 살아가는 구조를 함께 씁니다. 감정을 흘려보내지 않고 문장으로 붙잡아 오래 남는 글을 씁니다.

마당쇠야, 그 편지를 어찌 숨기느냐

새벽빛이 스미는 한옥 마당에서 마당쇠가 허리춤에 편지를 숨긴 채 빗자루로 마당을 쓸다가 안방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 기울이는 장면
밤새 숨겨둔 편지는 허리춤에 있었고, 마당쇠의 귀는 안방에서 나는 작은 기척에 먼저 멈춰 섰다.

 


마당쇠는 밤새 편지를 품고 잤다.

정확히 말하면 잠을 잔 것이 아니라, 편지와 함께 밤을 새웠다.

봉투 앞에는 분명히 적혀 있었다.

For the lady of this house.

이 집의 마님께

겨우 여섯 단어였다.

그런데 그 짧은 영어가 밤새 마당쇠의 가슴 위에 올라앉아 내려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마당쇠는 오른쪽으로 누웠다가 다시 왼쪽으로 돌아누웠다.

편지를 머리맡에 두었다가 발치로 밀어놓았고, 발치에 두었다가 다시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

혹시 쥐가 물어갈까 걱정되었다.

쥐가 영어를 읽을 줄 알면 더 큰일이었다.

새벽닭이 울 무렵, 마당쇠는 편지를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네가 아무리 서양 글씨로 치장을 하였어도, 연서면 연서일 것이 아니냐.”

봉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님께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이냐?”

봉투는 여전히 침묵했다.

“영어를 조금 안다고 사람을 무시하는 것이냐?”

마당쇠는 봉투와 한참 눈싸움을 벌였다.

먼저 눈을 피한 쪽은 마당쇠였다.

영어 편지는 눈도 없는데 지독하게 강한 상대였다.

마침내 아침이 밝았다.

마당쇠는 편지를 허리춤 깊숙이 숨기고 마당으로 나왔다.

평소라면 낙엽 세 장을 열두 번 쓸었겠지만, 이날은 낙엽 한 장도 제대로 쓸지 못했다.

빗자루는 마당을 쓸고 있었고, 마당쇠의 눈은 자꾸 허리춤으로 내려갔다.

안방에서 마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당쇠야.”

마당쇠의 몸이 빗자루보다 먼저 꼿꼿하게 섰다.

새벽빛이 비치는 한옥 마당에서 마당쇠가 편지를 허리춤에 숨긴 채 빗자루를 들고, 안방에서 들려오는 마님의 질문에 긴장한 표정으로 귀 기울이는 장면
“정녕 아무것도 없었느냐?” 편지는 허리춤에 있었고, 마당쇠의 대답은 낙엽 한 장보다 더 가벼웠다.

 

“예, 마님!”

“어젯밤 대문은 잘 닫았느냐?”

“예, 마님. 빈틈없이 닫았사옵니다.”

“대문 아래 떨어진 것은 없었느냐?”

마당쇠는 입술을 한 번 핥았다.

“없었사옵니다.”

안방이 잠시 조용해졌다.

그 침묵이 편지보다 더 무서웠다.

“정녕 아무것도 없었느냐?”

“낙엽 한 장뿐이었사옵니다.”

“초여름에 웬 낙엽이냐?”

마당쇠는 잠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성질이 급한 놈이었나 보옵니다.”

안방에서 작게 웃는 소리가 났다.

마당쇠는 그 웃음이 자신을 믿어서 나온 것인지, 거짓말을 다 알아서 나온 것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잠시 후 방문이 열렸다.

마님은 대청마루로 나와 손에 든 책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마당쇠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마당쇠야.”

“예, 마님.”

“허리춤에서 종이 냄새가 나는구나.”

마당쇠는 본능적으로 두 손을 등 뒤로 숨겼다.

“소인은 종이를 먹지 않았사옵니다.”

“먹었다고 한 적 없다.”

“그러면 다행이옵니다.”

마님이 손을 내밀었다.

“내게 온 서찰을 대령하거라.”

마당쇠는 꼼짝하지 않았다.

“마당쇠야.”

“예, 마님.”

“내가 영어로 말해야 내놓겠느냐?”

마당쇠의 눈이 커졌다.

마님은 또박또박 말했다.

오늘 마님이 꺼낸 첫마디

Tell me the truth.

텔 미 더 트루쓰

Tellmethetruth

사실대로 말해 보거라.


쉼표의 호흡 팁
Tell me / the truth처럼 끊어도 되지만,
실제로는 텔미 더 트루쓰처럼 앞부분을 가볍게 이어 말하면 자연스럽다.
truth의 끝소리는 혀끝을 윗니 사이에 살짝 두고 바람을 내보낸다.

마당쇠가 눈을 깜빡였다.

“마님.”

“말하거라.”

“방금 소인에게 사실대로 말하라 하신 것이옵니까?”

“알아들었구나.”

“뜻은 알아들었으나, 사실은 아직 준비되지 않았사옵니다.”

“사실에도 준비가 필요하더냐?”

“갑자기 밖으로 나오면 감기에 걸릴 수 있사옵니다.”

마님은 팔짱을 끼고 마당쇠를 바라보았다.

마당쇠는 결국 허리춤에서 봉투를 꺼냈다.

손에서 놓는 순간 편지가 마님에게 날아가 버릴 것 같아, 한쪽 귀퉁이를 끝까지 붙들고 있었다.

마님이 봉투를 당겼다.

마당쇠도 자신도 모르게 다시 당겼다.

봉투 한 장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의 손이 잠시 맞섰다.

“놓거라.”

“예, 마님.”

대답은 했지만 손가락은 움직이지 않았다.

“마당쇠야.”

“예, 마님.”

“손이 대답을 따르지 않는구나.”

한옥 툇마루 앞에서 마님이 편지 한쪽을 자연스럽게 붙잡고, 마당쇠가 볼을 부풀린 채 봉투 끝을 놓지 못하는 익살스러운 장면
“손이 대답을 따르지 않는구나.” 마당쇠는 놓겠다고 말했지만, 편지 귀퉁이만은 끝내 말을 듣지 않았다.

 

마당쇠는 마지못해 봉투를 놓았다.

마님은 봉투 앞면을 살펴보았다.

“내게 온 편지가 맞는구나.”

“소인도 그 점이 몹시 마음에 걸렸사옵니다.”

“어찌하여?”

“아무것도 아니옵니다.”

마님은 마당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볼은 부어 있었고, 입술은 한 자쯤 앞으로 나와 있었다.

편지를 숨긴 까닭을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마님은 웃음을 삼키며 물었다.

Who is this from?

후 이즈 디스 프럼?

Whoisthisfrom

이것은 누가 보낸 것이냐?

마당쇠는 대문 쪽을 가리켰다.

“어제 찾아온 서양 사내가 보낸 듯하옵니다.”

“그 사람이 직접 주었느냐?”

“아니옵니다. 밤에 대문 아래로 밀어 넣고 갔사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겠구나.”

It’s from the foreign visitor.

잇츠 프럼 더 포린 비지터

Itsfromtheforeignvisitor

그 외국 손님이 보낸 것입니다.

마당쇠는 문장을 따라 했다.

“It’s from the foreign visitor.”

마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하였다.”

마당쇠는 잘했다는 말을 듣고도 기쁘지 않았다.

외국 사내가 마님에게 편지를 보냈다는 사실을 영어로 또렷하게 확인한 꼴이었기 때문이다.

마님이 봉투를 열려 하자 마당쇠가 다급히 말했다.

“마님!”

“왜 그러느냐?”

“그 서찰을 꼭 지금 읽으셔야 하옵니까?”

“내게 온 서찰인데 읽지 않을 이유가 있느냐?”

“영어는 아침보다 저녁에 읽는 것이 낫다고 들었사옵니다.”

“누구에게 들었느냐?”

“방금 소인의 마음이 그리 말하였사옵니다.”

마님은 봉투에서 편지를 꺼냈다.

마당쇠는 고개를 돌리는 척하면서 눈동자만 마님 손에 들린 종이를 따라갔다.

마님이 첫 줄을 읽었다.

Dear Madam,

마님께

마당쇠의 얼굴이 굳었다.

“디어 마담이라 하였사옵니까?”

“그렇다.”

“디어가 무엇이옵니까?”

마님은 마당쇠의 표정을 잠시 살폈다.

“편지를 시작할 때 상대를 부르는 말이니라.”

“사랑하는 마님이라는 뜻은 아니옵니까?”

“때에 따라 그럴 수도 있지.”

마당쇠의 입이 더 앞으로 나왔다.

“서양 사내들은 편지 첫 줄부터 참으로 성급하옵니다.”

마님은 더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마당쇠야.”

“예, 마님.”

“혹시 이 서찰을 열어보았느냐?”

마당쇠는 펄쩍 뛰었다.

I didn’t open it.

아이 디든 오 우픈

Ididntopenit

소인은 그것을 열어보지 않았사옵니다.


쉼표의 호흡 팁
didn’t open it은 단어마다 힘주지 말고
디든 오우프닛처럼 자연스럽게 이어 말한다.
open과 it 사이가 붙으면서 끝의 n 소리가 다음 모음으로 넘어간다.

마당쇠가 가슴에 손을 얹고 말했다.

“I didn’t open it.”

“정녕이냐?”

“예, 마님. 소인은 글자를 모를 뿐, 예의까지 모르는 사내는 아니옵니다.”

마님은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믿겠다.”

마당쇠의 어깨가 조금 내려갔다.

“다만.”

다시 어깨가 올라갔다.

“왜 숨겼느냐?”

마당쇠는 마당 한쪽을 바라보았다.

대답 대신 빗자루를 찾았지만, 빗자루는 대문 옆에서 아무 도움도 주지 않았다.

“그저…… 궁금했을 뿐이옵니다.”

마님이 영어로 바꾸어주었다.

I was just curious.

아이 워즈 저스트 큐리어스

Iwasjustcurious

그저 궁금했을 뿐이옵니다.

마당쇠가 따라 말했다.

“I was just curious.”

“궁금한 것뿐이었느냐?”

“예, 마님.”

“속이 쓰리거나 가슴이 답답하지는 않았고?”

“어찌 아셨사옵니까?”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마당쇠는 황급히 입을 막았다.

마님은 아무 말 없이 편지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한옥 툇마루에서 마님이 영어 편지를 펼쳐 읽고, 마당쇠가 두 손을 모은 채 고개를 숙이며 긴장한 표정으로 내용을 기다리는 장면
연서인 줄 알았던 편지에는 사랑 고백 대신, 마당쇠의 가능성이 적혀 있었다.

 

편지에는 사랑한다는 말도, 그립다는 말도 없었다.

어제 길을 안내해 준 것에 대한 감사와 함께, 뜻밖의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The young man has a good ear for language.

그 젊은이는 언어를 듣는 귀가 좋습니다.

마당쇠는 눈을 깜빡였다.

“그 젊은이가 누구이옵니까?”

마님이 편지 너머로 마당쇠를 바라보았다.

“너를 말하는 듯하구나.”

“소인을 말이옵니까?”

“어제 네가 들은 문장을 곧바로 따라 하고, 길을 설명하는 모습을 보았다고 적혀 있다.”

마당쇠는 자기 귀를 만졌다.

“소인의 귀가 그리 쓸 만하였사옵니까?”

“나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마님께서 말이옵니까?”

“너는 남의 말투를 잘 기억하고, 한 번 들은 소리를 오래 잊지 않더구나.”

마당쇠는 처음 듣는 이야기처럼 멍하니 서 있었다.

자신에게도 남보다 나은 것이 있다는 말을 누군가에게 들은 것은 처음이었다.

마님은 편지의 다음 줄을 읽었다.

If he wants to learn, I can teach him.

그가 배우기를 원한다면, 제가 가르칠 수 있습니다.

마당쇠의 얼굴에서 질투가 빠져나가고 당황이 들어왔다.

“저자가 소인을 가르치겠다고 하였사옵니까?”

“그렇다.”

“어째서이옵니까?”

“가능성이 보였기 때문이겠지.”

마당쇠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마님은 조용히 편지를 접었다.

사실 이 서찰은 우연히 도착한 것이 아니었다.

외국 손님이 오기 전부터 마님은 한양에서 언어와 신학문을 가르치는 사람을 수소문해 왔다.

마당쇠가 평생 마당만 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당쇠가 스스로 배우겠다고 말하기 전에는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마님이 물었다.

“배우고 싶으냐?”

마당쇠는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영어는 여전히 낯설었다.

자신이 배울 만한 사람인지도 믿을 수 없었다.

다만 어제 한 문장이 대문을 넘어갔던 순간은 아직도 가슴에 남아 있었다.

자신의 말이 누군가에게 닿았던 순간.

마님이 자신을 바라보며 잘했다고 말해주었던 순간.

마당쇠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마님.”

“말하거라.”

“소인이 배워도 되겠사옵니까?”

“그것을 왜 내게 묻느냐?”

“소인은 배운 것이 없사옵니다.”

“배운 것이 없으니 배우는 것이 아니더냐.”

마당쇠의 눈이 조금 붉어졌다.

그는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 소인도 한번 배워보고 싶사옵니다.”

마님은 영어로 물었다.

Do you want to learn?

두 유 워너 ?

Doyouwanttolearn

배우고 싶으냐?

마당쇠는 숨을 한 번 고른 뒤 대답했다.

“Yes, I do.”

예, 배우고 싶사옵니다.

마님은 오래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잘하였다.”

마당쇠는 멋쩍게 웃었다.

“그런데 마님.”

“또 무엇이냐?”

“편지에는 정말 소인 이야기만 적혀 있었사옵니까?”

“그렇다.”

“디어 마담 다음에 사랑한다는 말은 없었사옵니까?”

마님은 접은 편지로 마당쇠의 이마를 가볍게 쳤다.

“영어 공부를 시작하기도 전에 질투부터 배웠구나.”

마당쇠가 이마를 문지르며 말했다.

“질투는 배우지 않아도 입에서 절로 나옵니다.”

마님은 방으로 돌아가려다 걸음을 멈췄다.

“마당쇠야.”

“예, 마님!”

“내일부터 새벽마다 글공부도 함께 시작하자꾸나.”

마당쇠의 웃음이 그대로 굳었다.

“영어만 배우는 것이 아니었사옵니까?”

“영어로 말하려면 생각이 있어야 하고, 생각을 세우려면 글을 알아야 한다.”

“소인은 갑자기 낙엽을 쓸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사옵니다.”

“낙엽은 글공부를 마친 뒤에 쓸거라.”

“예, 마님…….”

이날 마당쇠의 대답은 편지를 숨겼을 때보다 더 작았다.

그날 밤, 마님은 장롱 깊숙한 곳에서 오래된 책 한 권을 꺼냈다.

책 첫 장에는 마당쇠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의 이름이었다.

마당쇠가 마당에 들어오기 전, 아주 어린 시절에 불렸던 본래의 이름.

마님은 그 이름을 손끝으로 천천히 쓸어보았다.

“이제 네 이름을 다시 찾아줄 때가 되었구나.”


다음 이야기

제3화. 마당쇠에게 이름이 있었다

새벽 글공부가 시작된 첫날.
마님은 마당쇠에게 이제껏 숨겨온 이름을 건넨다.

마님: 이제부터 너를 마당쇠라 부르지 않겠다.

마당쇠: 그러면 소인은 무엇이라 불러야 하옵니까?

오늘 마당쇠가 대령한 영어

Tell me the truth.
사실대로 말해 보거라.

Who is this from?
이것은 누가 보낸 것이냐?

It’s from the foreign visitor.
그 외국 손님이 보낸 것입니다.

I didn’t open it.
소인은 그것을 열어보지 않았사옵니다.

I was just curious.
그저 궁금했을 뿐이옵니다.

Do you want to learn?
배우고 싶으냐?

Yes, I do.
예, 배우고 싶사옵니다.

마님: 네가 영어를 못하는 것이 부끄러운 게 아니다.

마당쇠: 그러면 무엇이 부끄러운 것이옵니까?

마님: 배울 수 있는데도 스스로 안 된다고 입을 닫는 것이니라.

… 쉼표 JEONG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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