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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표의 서재

오늘을 남기는 사람: 기록 · 언어 · AI · 콘텐츠


마님과 마당쇠의 영어 한마당

마님과 마당쇠가 벌이는 영어 한마당 · 제3화```마당쇠에게 이름이 있었다

글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작은 연구실의 쉼표 입니다.

글쓰기와 기록, 그리고 글로 살아가는 구조를 함께 씁니다. 감정을 흘려보내지 않고 문장으로 붙잡아 오래 남는 글을 씁니다.

이제부터 너를 마당쇠라 부르지 않겠다

새벽빛이 스미는 한옥 툇마루에서 마님이 ‘윤겸’ 두 글자가 적힌 오래된 책을 펼쳐 보이고, 마당쇠가 놀란 표정으로 자신의 이름을 바라보는 장면
평생 마당쇠로 불렸던 사내는 그날 아침, 오래전부터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이름과 처음 마주했다.


새벽닭이 첫울음을 터뜨리기도 전이었다.

마당쇠는 대청마루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어젯밤 마님이 내린 분부 때문이었다.

“내일부터 새벽마다 영어와 글공부를 함께 시작하자꾸나.”

마당쇠는 밤새 고민했다.

새벽이 오지 않으면 공부도 시작되지 않을 터였다.

그래서 그는 이불 속에서 눈을 감은 채 새벽이 오지 않기를 간절히 빌었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해는 마당쇠의 사정 따위는 조금도 살피지 않았다.

동쪽 담장 너머가 희미하게 밝아오자, 마당쇠는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얼굴로 대청마루 앞에 앉았다.

그의 앞에는 붓과 먹, 종이 한 장이 놓여 있었다.

붓은 가늘었고, 먹은 검었으며, 종이는 지나치게 깨끗했다.

마당쇠는 세 가지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다.

특히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종이가 가장 무서웠다.

빈 종이는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네가 아는 것이 있으면 어디 한번 적어보아라.

마당쇠는 슬그머니 빗자루가 세워진 대문 쪽을 바라보았다.

빗자루는 참으로 정직한 물건이었다.

잡고 쓸기만 하면 되었다.

틀릴 글자도 없었고, 발음할 영어도 없었다.

그때 안방 문이 열렸다.

마님이 오래된 책 한 권을 품에 안고 나왔다.

“마당쇠야.”

“예, 마님.”

평소보다 기운이 빠진 대답이었다.

마님은 그의 얼굴을 살폈다.

“밤새 잠을 자지 못하였느냐?”

“소인은 아주 잘 잤사옵니다.”

“눈 아래에 먹물을 먼저 칠했구나.”

마당쇠가 두 손으로 눈 밑을 문질렀다.

“글공부를 시작하기도 전에 먹물이 들었으니, 소인에게 학문의 재주가 있는 모양이옵니다.”

마님은 웃음을 누르며 책을 내려놓았다.

“오늘은 글자보다 먼저 배울 것이 있다.”

“영어이옵니까?”

“아니다.”

“그러면 소인은 다시 자러 가도 되겠사옵니까?”

“그것도 아니다.”

마당쇠의 어깨가 다시 축 처졌다.

마님은 오래된 책을 펼쳤다.

누렇게 바랜 첫 장에는 반듯한 글씨 두 자가 적혀 있었다.

마당쇠가 고개를 길게 빼고 들여다보았다.

글자를 읽지는 못했지만, 이상하게도 처음 보는 글씨 같지 않았다.

마님이 조용히 물었다.

“이 글자가 무엇인지 아느냐?”

“소인이 글자를 알았다면 지금 마당을 쓸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옵니다.”

“마당을 쓰는 일이 어찌 낮은 일이더냐?”

“낮은 일은 아니오나, 새벽에 붓을 잡는 일보다는 소인에게 훨씬 높은 일이옵니다.”

마님은 손끝으로 첫 번째 글자를 짚었다.

“윤.”

이어 두 번째 글자를 짚었다.

“겸.”

마당쇠는 입술을 천천히 움직였다.

“윤…… 겸.”

그 이름이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오래 잠겨 있던 문 하나가 가슴속에서 희미하게 흔들렸다.

마님이 말했다.

“네 이름이니라.”

마당쇠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새벽바람이 대청마루 아래를 스쳐 지나갔다.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와 멀리서 들려오는 닭 울음만 마당을 채웠다.

마당쇠가 겨우 입을 열었다.

“소인에게…… 이름이 있었사옵니까?”

“누구에게나 이름은 있다.”

“소인은 평생 마당쇠인 줄 알았사옵니다.”

“그것은 네가 하던 일을 따라 사람들이 부른 이름일 뿐이다.”

마님은 책을 마당쇠 앞으로 밀어놓았다.

“네가 태어났을 때 받은 이름은 윤 겸이다.”

마당쇠는 책에 적힌 두 글자를 손끝으로 조심스럽게 만졌다.

이름은 종이 위에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그 이름의 주인은 이제야 돌아온 사람처럼 낯설어했다.

“윤겸…….”

그는 다시 한번 자기 이름을 불러보았다.

이번에는 첫 번째보다 조금 더 분명한 목소리였다.

오늘 마님이 건넨 첫 질문

What is your name?

워리쥬어 네임?

Whatisyourname

네 이름이 무엇이냐?


쉼표의 호흡 팁
What / is / your / name처럼 한 단어씩 자르지 말고,
워리쥬어 네임처럼 앞부분을 부드럽게 이어 말한다.
뜻을 묻는 문장이므로 마지막 name에 가장 또렷하게 힘을 준다.

마당쇠가 눈을 깜빡였다.

“마님께서 방금 소인의 이름을 물으셨사옵니까?”

“그렇다.”

“이미 알고 계시지 않사옵니까?”

“알고 있어도 묻고, 알고 있어도 대답하는 것이 말공부다.”

“영어란 참으로 수고스러운 것이옵니다.”

마님은 다시 영어로 물었다.

“What is your name?”

마당쇠는 책에 적힌 이름을 바라보았다.

이제껏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면 언제나 “마당쇠야”였다.

대답도 언제나 같았다.

“예, 마님.”

그런데 오늘은 자신의 이름으로 대답해야 했다.

마님이 천천히 문장을 알려주었다.

My name is Yoon-gyeom.

마이 네이미즈 윤겸

MynameisYoongyeom

제 이름은 윤 겸입니다.


쉼표의 호흡 팁
My name is를 따로 읽지 말고
마이 네이미즈처럼 name과 is를 자연스럽게 붙인다.
이름은 자신의 것이므로 마지막에 또렷하고 당당하게 말한다.

마당쇠는 첫 단어에서부터 목이 잠겼다.

“마이…… 네임…….”

“숨을 멈추지 말거라.”

“이름을 영어로 말하려니, 소인의 이름이 갑자기 외국으로 떠나는 기분이옵니다.”

“떠나는 것이 아니다. 더 멀리 닿는 것이니라.”

마당쇠는 마님을 바라보았다.

“더 멀리 말이옵니까?”

“네 이름을 아는 사람이 이 집 안에만 있어야 할 이유는 없지 않느냐.”

마당쇠는 다시 숨을 들이마셨다.

이번에는 문장을 토막 내지 않았다.

“My name is Yoon-gyeom.”

제 이름은 윤겸입니다.

말이 끝나자 마당쇠는 입을 다물었다.

마님도 아무 말 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마당쇠가 먼저 물었다.

“어떠하옵니까?”

“무엇이?”

“소인의 이름이 영어로도 쓸 만하옵니까?”

“영어가 네 이름을 쓸 만한지 물어야 하지 않겠느냐?”

마당쇠의 입꼬리가 조금 올라갔다.

“영어가 소인의 이름을 잘 모시고 있는 듯하옵니다.”

“방금 네가 영어를 부리는 법을 하나 배웠구나.”

마당쇠는 자기 이름이 적힌 책을 다시 바라보았다.

어제까지 영어는 자신을 시험하는 높은 담장 같았다.

그런데 오늘 영어는 자기 이름을 세상 밖으로 실어 나르는 작은 수레처럼 느껴졌다.

마님은 붓을 들어 먹을 묻혔다.

그리고 새 종이 위에 ‘윤겸’ 두 글자를 천천히 써 내려갔다.

“이제 네가 써보거라.”

마당쇠의 얼굴에 다시 어둠이 내려앉았다.

“말하는 것까지만 하면 안 되겠사옵니까?”

“네 이름을 입으로만 알고 손으로는 모른다면 반쪽짜리가 아니겠느냐.”

“소인은 반쪽으로도 제법 잘 살아왔사옵니다.”

“오늘부터 온전하게 살아보거라.”

마당쇠는 마지못해 붓을 집었다.

빗자루보다 훨씬 가벼운 물건인데도 손목이 천근처럼 무거웠다.

붓끝이 종이에 닿았다.

첫 획은 지나치게 길었다.

두 번째 획은 갈 곳을 잃고 옆으로 누웠다.

세 번째 획은 앞의 두 획과 만나기를 거부했다.

한 글자를 다 쓰고 나니, 이름이라기보다 장터에서 술에 취한 지렁이 세 마리가 씨름하는 모양이었다.

마당쇠는 종이를 몸으로 가렸다.

“마님, 첫 글자는 바람이 너무 많이 불었사옵니다.”

“방 안인데 무슨 바람이냐?”

“소인의 손 안에서 돌풍이 일었사옵니다.”

마님은 그의 손에서 붓을 빼앗지 않았다.

대신 마당쇠의 손등 위에 자신의 손을 가볍게 얹었다.

한옥 툇마루에서 마님이 붓을 쥔 윤겸의 손등 위에 손을 가볍게 얹어 자세를 바로잡아주고, 윤겸이 긴장한 표정으로 빈 한지를 바라보는 장면
빈 종이 위에는 아직 아무 글자도 없었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이미 한 줄이 쓰이고 있었다.

 

“힘을 빼거라.”

마당쇠의 손이 더 굳었다.

“마님께서 손을 얹으시니 힘이 더 들어가옵니다.”

“어찌하여?”

“소인의 손이 갑자기 제 손이 아닌 듯하옵니다.”

마님은 그의 말을 못 들은 척 붓을 움직였다.

두 사람의 손을 따라 먹빛 획이 종이 위에 차분히 놓였다.

윤.

겸.

이번에는 분명히 이름이었다.

마님이 손을 거두자 마당쇠는 잠시 아쉬운 얼굴을 했다.

그러나 곧 종이 위에 적힌 글자를 보며 웃었다.

“마님.”

“말하거라.”

“소인이 쓴 것이 맞사옵니까?”

“내가 조금 도왔으나 네 손으로 쓴 것이다.”

마당쇠는 종이를 두 손으로 들어 햇빛에 비춰보았다.

“소인의 이름이 참으로 반듯하옵니다.”

“아직 네가 혼자 쓴 것은 술 취한 지렁이에 가깝다.”

“지렁이도 잘 키우면 용이 될 수 있지 않겠사옵니까?”

마님이 피식 웃었다.

“그러니 매일 쓰거라.”

“용이 될 때까지 말이옵니까?”

“네 이름이 네 손에 익을 때까지.”

마당쇠는 종이를 가슴 가까이 끌어당겼다.

“마님.”

“또 무엇이냐?”

“이제부터 소인을 윤 겸이라 부르실 것이옵니까?”

마님은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오래전부터 그 이름을 다시 불러줄 날을 기다렸지만, 막상 그 순간이 오자 목소리가 쉽게 나오지 않았다.

마님은 숨을 고르고 말했다.

“윤겸아.”

마당쇠의 눈이 크게 열렸다.

누구도 오래도록 불러주지 않았던 이름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님의 목소리로 듣자, 그 이름은 처음부터 자기 것이었던 것처럼 가슴에 꼭 맞았다.

“예, 마님.”

마님은 고개를 저었다.

“다시.”

“무엇을 말이옵니까?”

“내가 네 이름을 불렀으니, 이름으로 대답해야 하지 않겠느냐.”

마당쇠는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배운 영어를 떠올렸다.

You can call me Yoon-gyeom.

유 캔 콜 미 윤 겸

YoucancallmeYoongyeom

저를 윤 겸이라 부르시면 됩니다.

마당쇠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You can call me Yoon-gyeom.”

마님이 눈썹을 살짝 올렸다.

“내가 네 이름을 이제야 알게 된 사람처럼 말하는구나.”

“영어로 말하니 조금 거만해진 듯하옵니다.”

“그 정도는 괜찮다.”

“정녕이옵니까?”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자기 이름을 말하는 데 어찌 주눅이 들어야 하느냐.”

마당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다시 한번 말해보겠사옵니다.”

그는 허리를 조금 펴고 마님을 바라보았다.

“My name is Yoon-gyeom.”

제 이름은 윤 겸입니다.

이번에는 목소리가 흔들리지 않았다.

마님은 말없이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마당을 쓸던 사내는 여전히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러나 마님의 눈에는 어제와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사람이 하루아침에 달라진 것이 아니었다.

오래전부터 그 안에 있던 사람이 이제야 자기 이름을 말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마님은 마음속으로 조용히 다짐했다.

저 이름이 언젠가 과거 급제자 명단에 오를 때까지,

마당쇠가 아닌 윤 겸으로 세상 앞에 설 때까지,

자신이 먼저 그 이름을 믿어주리라고.

그때 대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쿵, 쿵, 쿵.

마당쇠가 반사적으로 빗자루를 찾았다.

“마님, 아직 수업이 끝나지 않았다고 말씀하시옵소서.”

“네가 직접 말하거라.”

“영어로 말이옵니까?”

대문 밖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Good morning! I’m here for his first lesson.”

좋은 아침입니다. 그의 첫 수업을 위해 왔습니다.

마당쇠의 얼굴이 굳었다.

어제 편지를 보냈던 외국 손님의 목소리였다.

한옥 대문 앞에 외국인 영어 선생이 책과 가방을 들고 서 있고, 윤겸이 자신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품에 안은 채 놀라 돌아보며, 마님이 툇마루에서 두 사람을 바라보는 장면
이름을 되찾은 아침, 윤겸의 첫 번째 손님은 기다려주지 않고 대문을 넘어왔다.

 

마님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윤겸아, 네 영어 선생이 왔구나.”

마당쇠는 새로 쓴 자기 이름을 품 안에 넣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마님.”

“말하거라.”

“소인의 이름을 다시 마당쇠로 돌려놓으면, 오늘 수업을 피할 수 있사옵니까?”

“아니 된다.”

“예, 마님…….”

이름을 되찾은 윤 겸의 첫 번째 시련은,

이름을 영어로 말하는 일이 아니라 영어 선생과 마주 앉는 일이었다.


다음 이야기

제4화. 윤겸아, 영어 선생님 오셨다.

윤겸의 첫 정식 영어 수업이 시작된다.
그러나 외국인 선생은 인사 한마디를 건넨 뒤, 뜻밖의 물건을 탁자 위에 올려놓는다.

외국인 선생: Repeat after me.

윤겸: 마님, 저자가 소인을 따라 하라 하는 것 같사옵니다.

마님: 네가 저 사람을 따라 해야 하느니라.

매주 수요일과 일요일 오전 8시, 다음 이야기를 대령하겠사옵니다.

오늘 윤 겸이 대령한 영어

What is your name?
네 이름이 무엇이냐?

My name is Yoon-gyeom.
제 이름은 윤 겸입니다.

You can call me Yoon-gyeom.
저를 윤 겸이라 부르시면 됩니다.

Good morning.
좋은 아침입니다.

I’m here for his first lesson.
그의 첫 수업을 위해 왔습니다.

마님: 네가 어떤 일을 하였는지는 네 이름이 아니니라.

윤겸: 그러면 이름은 무엇이옵니까?

마님: 앞으로 네가 어떤 사람이 될지 잊지 않게 붙들어주는 말이니라.

… 쉼표 JEONG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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