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쉼표의 서재

구조를 기록하는 공간


베트남 공장 실무

베트남 봉제공장, 작업 지시서 없이 생산하면 생기는 일

오늘 공장에서 사고가 났다.

왼쪽 허벅지에 달려야 할 아웃포켓이 오른쪽 무릎에 달려 나왔다. 완성된 제품을 확인하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타 브랜드 오더였다면 전량 클레임이었다. 납기 지연에 재작업비에 바이어 신뢰 손상까지, 삼중 타격을 맞았을 상황이었다.

다행히 자체 브랜드 오더였다. 그나마 다행이라는 말이 이렇게 씁쓸하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통일된 유니폼과 체계적인 관리 속에서 운영되는 의류 생산 현장

노란 유니폼을 입은 직원들과 여성 현장 관리자가 점검 중인 대형 의류공장 내부 전경
노란 유니폼으로 정렬된 생산 라인과 현장 관리자의 점검 모습이 조화를 이루는 의류공장 전경. 반복과 구조 위에서 조직은 안정된다.



 

문제는 포켓이 아니었다

현장에서 30년 넘게 일하면서 포켓 위치 오류는 처음이었다. 기술팀이 작업 지시를 잘못 내린 게 직접 원인이었다. 하지만 거기서 멈추면 이 글을 쓰는 의미가 없다.

진짜 문제는 그 이전에 있었다.

이번 오더를 처음 받았을 때를 돌아보면, 서울 본사에서 넘어온 것은 패턴 하나뿐이었다. 작업지시서 없음. 코멘트 없음. 사이즈 스펙 없음. "패턴 보고 알아서 만들어라"는 게 지시의 전부였다.

타 브랜드들은 다르다. 작업지시서, 코멘트, 사이즈 스펙이 완벽하게 들어온다. 그래서 문제가 없다. 자체 브랜드라는 이유로 기본 서류를 생략하는 순간, 사고는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다.


작업지시서가 없으면 어떤 일이 생기는가

베트남 현장에서 일하다 보면 언어 장벽이 있다. 한국인 관리자와 베트남 기술팀 사이에는 항상 해석의 여지가 생긴다. 패턴만 있고 코멘트가 없으면, 기술팀은 스스로 판단해서 지시를 내린다. 그 판단이 틀렸을 때 결과는 오늘처럼 나온다.

구체적으로 작업지시서가 없을 때 발생하는 문제들을 정리하면 이렇다.

첫째, 디테일 해석 오류다. 포켓 위치처럼 패턴만으로는 명확하지 않은 디테일은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한다. 한국에서 의도한 것과 베트남 현장의 해석이 다를 때 제품이 달라진다.

둘째,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진다. 문제가 생겼을 때 서울 본사는 공장 탓을 한다. 공장은 지시가 없었다고 한다. 서로 맞는 말이라는 게 더 큰 문제다. 서류가 없으면 누구의 잘못인지 증명할 방법이 없다.

셋째, 수습 비용이 발생한다. 오늘의 경우 포켓을 떼어내고 절개 넣어 스티치로 연결하는 방식으로 제품을 살렸다. 이 수습 작업에 들어가는 시간과 인력은 어디서도 보전받지 못한다.


오늘의 해결 방법

잘못 달린 포켓을 그냥 뜯어내면 원단에 자국이 남는다. 그래서 포켓 자리를 절개선으로 전환하고, 장식 스티치를 넣어서 디자인으로 살렸다. 오류를 폐기가 아닌 디자인 변경으로 수습한 것이다.

제품은 살렸다. 하지만 기술팀 책임은 분명히 짚었다. 실수는 할 수 있다. 하지만 자기가 지시한 결과물을 보고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라고 하는 건 다른 문제다. 현장에서는 실수보다 책임 회피가 더 위험하다.


이것만은 반드시 갖춰야 한다

베트남에서 봉제 생산을 진행한다면, 자체 브랜드든 외부 브랜드든 관계없이 반드시 갖춰야 할 서류가 있다.

작업지시서는 기본이다. 포켓 위치, 봉제 방법, 부자재 사용 위치 등 패턴만으로 알 수 없는 모든 디테일을 문서화해야 한다. 사이즈 스펙은 각 사이즈별 치수를 명확히 수치로 제공해야 한다. 코멘트는 이전 샘플에서 지적된 사항, 특별히 주의해야 할 포인트를 정리한 것이다. 이 세 가지가 없으면 생산은 시작하지 않는 것이 맞다.

39년 현장에서 얻은 원칙이 있다. "패턴은 설계도다. 하지만 설계도만으로 집을 짓는 시공사는 없다."


결정을 반복하는 조직은 멈추지 않는다

의류 생산 현장을 배경으로 회의를 이끄는 여성 리더
현장과 연결된 구조 속에서 판단은 루틴이 된다. 반복이 쌓일 때 조직은 강해진다.


마지막으로

오늘 사고는 자체 브랜드여서 외부 클레임은 피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 소모한 시간과 인력, 그리고 수습 과정에서 발생한 비용은 고스란히 공장이 떠안았다.

베트남 공장에서 생산을 진행하는 한국 본사라면, "현지 공장이 알아서 해주겠지"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서류를 갖추는 것은 공장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당신의 브랜드를 위한 것이다.


베트남 공장 실무 관련 글은 계속 업데이트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