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쉼표JEONGSEON

오늘을 남기는 사람 쉼표


쉼표의 서재

아무 말 없이 함께 걷던 순간

당신의 이야기를 글로 만들어드립니다. 작가 쉼표JEONGSEON 입니다.

글쓰기와 기록, 그리고 글로 살아가는 구조를 함께 씁니다. 감정을 흘려보내지 않고 문장으로 붙잡아 오래 남는 글을 씁니다.

 

〈아무 말 없는 수요일〉 연작


말을 하지 않아도 함께 걷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했던 순간이 있다.

굳이 무슨 이야기를 꺼내지 않아도, 침묵이 어색하지 않았던 시간.

발걸음 소리만 나란히 이어지던 길 위에서 나는 이상하게도 혼자가 아니었다.


그날 우리는 같은 속도로 걷고 있었다.

누가 먼저 맞추자고 한 것도 아닌데, 서로의 걸음을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나란해졌다.

괜히 말을 붙였다가 이 고요를 깨고 싶지 않아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가끔 이야기보다 존재를 더 필요로 한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묻지 않아도, 어디로 가는지 정하지 않아도, 지금 이 길을 함께 걷고 있다는 사실 하나면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다.


그 사람은 앞서지도, 뒤처지지도 않았다.

그저 옆에 있었다.

그 거리감이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아서 나는 그날 괜히 숨을 고르게 쉬었다.


아무 말 없이 함께 걷는다는 건 상대에게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지금 모습 그대로 괜찮다고, 말하지 않고 건네는 신호처럼.


집에 거의 다다랐을 즈음, 우리는 아무 약속도 하지 않았다.

다음에 또 보자는 말도, 오늘 좋았다는 말도 없이 그저 각자의 길로 흩어졌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마음 한쪽이 오래 따뜻했다.


아무 말 없이 함께 걷던 순간은 대단한 기억으로 남지 않을지도 모른다.

사진도 없고, 이야기할 만한 사건도 없다.

하지만 가끔, 혼자 길을 걸을 때 그날의 걸음이 문득 겹쳐진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누군가와 나란히 걷게 되면 괜히 속도를 늦춘다.

말하지 않아도 함께 걷고 있다는 느낌이 그 사람에게도 전해지기를 바라면서.


〈아무 말 없는 수요일〉 연작 중

#감성에세이 #아무 말없는 수요일 #함께 걷던 순간 #조용한 동행 #쉼표의 글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