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쉼표의 서재

오늘을 남기는 사람: 기록 · 언어 · AI · 콘텐츠


마님과 마당쇠의 영어 한마당

마님과 마당쇠가 벌이는 영어 한마당 · 제4화 윤겸아, 영어 선생님 오셨다

글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작은 연구실의 쉼표 입니다.

글쓰기와 기록, 그리고 글로 살아가는 구조를 함께 씁니다. 감정을 흘려보내지 않고 문장으로 붙잡아 오래 남는 글을 씁니다.

이름을 되찾은 다음 날, 도망칠 수 없는 첫 수업이 시작되었다


대문 밖에서 세 번의 인기척이 들렸다.

쿵, 쿵, 쿵.

윤 겸은 새로 쓴 자기 이름을 품 안에 넣은 채 몸을 굳혔다.

어제 편지를 보냈던 외국 손님의 목소리였다.

마님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윤겸아, 영어 선생님 오셨다.”

윤 겸은 대문을 바라보다가 슬그머니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마님.”

“말하거라.”

“소인이 방금 이름을 되찾지 않았사옵니까?”

“그렇지.”

“이름을 되찾은 기쁨을 사흘쯤 누린 뒤 수업을 시작하는 것이 사람의 도리가 아니겠사옵니까?”

“영어 선생님은 이미 대문 앞에 계신다.”

“그분께서도 사흘쯤 기쁨을 누리시고 다시 오시면 되지 않겠사옵니까?”

마님은 윤 겸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윤 겸은 그 눈빛을 알고 있었다.

저 눈빛이 나오면 변명은 다리가 짧아졌고, 도망은 대문에 닿기도 전에 붙잡혔다.

그는 마지못해 대문으로 걸어갔다.

발은 앞으로 움직였지만 마음은 계속 뒤를 돌아보았다.

대문을 열자 외국인 선생이 환한 얼굴로 서 있었다.

햇살이 비치는 한옥 대문 앞에 외국인 영어 선생이 책과 가방을 들고 서 있고, 윤겸이 놀란 표정으로 뒤돌아보며 마님이 툇마루에서 두 사람을 바라보는 장면
이름을 되찾자마자, 윤겸의 첫 수업이 대문을 두드렸다

 

한 손에는 가죽 가방을 들고, 다른 손에는 두꺼운 책 한 권을 품고 있었다.

“Good morning, Yoon-gyeom.”

좋은 아침입니다, 윤겸.

윤 겸은 눈을 크게 떴다.

외국인의 입에서 자기 이름이 흘러나왔다.

어제까지만 해도 아무도 불러주지 않던 이름이었다.

그런데 하루 만에 대문 밖 사람까지 그 이름을 알고 있었다.

윤 겸은 얼떨결에 허리를 깊이 숙였다.

“예, 선생님. 소인이 바로 그 윤 겸이옵니다.”

외국인 선생이 마님을 바라보았다.

“What did he say?”

윤 겸이 재빨리 마님에게 물었다.

“저분께서 소인의 말에 감탄하신 것이옵니까?”

“네가 무슨 말을 했는지 물으셨다.”

윤 겸은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감탄하시기에는 소인의 영어가 너무 깊었나 보옵니다.”

마님은 웃음을 참으며 선생을 안으로 안내했다.

윤겸은 두꺼운 영어책을 바라보았다.

책이 두꺼울수록 배워야 할 것이 많다는 뜻이었다.

그는 자신의 목숨이 조금 얇아지는 기분을 느꼈다.

오늘 윤 겸이 처음 들은 인사

Good morning.

굿 모닝

Goodmorning

좋은 아침입니다.


쉼표의 호흡 팁
Good을 길게 끌지 말고 짧게 닫아준 뒤,
굿모닝을 한 호흡으로 자연스럽게 이어 말한다.
인사말은 힘을 주기보다 밝고 가볍게 건네는 것이 좋다.

세 사람은 대청마루에 마주 앉았다.

외국인 선생은 가죽 가방을 열었다.

윤 겸은 그 안에서 어떤 무시무시한 영어책이 나올지 긴장했다.

그러나 선생이 꺼낸 것은 책이 아니었다.

사과 하나였다.

윤겸은 사과를 보다가 마님을 바라보았다.

“마님.”

“왜 그러느냐?”

“영어를 배우기 전에 배부터 채우라는 깊은 뜻이옵니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외국인 선생은 사과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또렷하게 말했다.

“Apple.”

사과.

윤 겸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사과를 달라는 말이옵니까?”

외국인 선생은 사과를 윤겸 앞으로 내밀었다.

윤 겸은 자연스럽게 받아 들었다.

그리고 크게 한입 베어 물었다.

한옥 대청마루에서 외국인 영어 선생이 사과를 내밀며 단어를 가르치는 동안, 윤겸이 뜻을 오해해 사과를 한입 베어 물고 마님이 웃음을 참으며 바라보는 장면
영어 선생은 단어를 건넸고, 윤겸은 간식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아삭.

외국인 선생의 눈이 커졌다.

마님은 입술을 깨물며 웃음을 참았다.

윤겸은 사과를 씹으며 물었다.

“왜들 그러시옵니까?”

“선생님께서 먹으라고 주신 것이 아니다.”

“손수 내미셨사옵니다.”

“영어 이름을 가르치려고 내미신 것이다.”

윤겸은 한입 베어 문 사과를 내려다보았다.

“영어는 먹기 전에 배워야 하는 것이옵니까?”

외국인 선생은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웃었다.

그리고 다시 말했다.

“Repeat after me. Apple.”

나를 따라 하세요. 애플.

윤겸은 마님의 귀 가까이 얼굴을 가져갔다.

“저분께서 방금 소인을 따라 하라 하신 것 같사옵니다.”

“네가 선생님을 따라 해야 하느니라.”

“외국에서는 손님이 주인을 따라 하는 법이옵니까?”

“윤겸아.”

마님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윤겸은 즉시 허리를 바로 세웠다.

“예, 마님. 소인이 따르겠사옵니다.”

오늘의 첫 따라 말하기

Repeat after me.

 애프터 미

Repeatafterme

나를 따라 말하세요.


쉼표의 호흡 팁
Repeat은 첫음절보다 두 번째 음절에 힘을 준다.
리핏 / 애프터 미처럼 너무 잘게 끊지 말고,
리피래프터미에 가깝게 부드럽게 이어 말한다.

외국인 선생이 사과를 가리켰다.

“Apple.”

윤 겸이 따라 말했다.

“이쁠.”

선생이 다시 말했다.

“Apple.”

“이쁠.”

“Apple.”

“아뿔싸.”

마님이 고개를 돌리고 웃었다.

외국인 선생은 ‘사’가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윤 겸은 억울했다.

“분명히 혀를 움직였는데, 왜 자꾸 조선말이 뒤에 붙는 것이옵니까?”

마님이 사과를 가리키며 천천히 말했다.

“애플.”

윤 겸이 마님의 입술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애플.”

이번에는 제법 비슷했다.

외국인 선생이 환하게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들었다.

“Good!”

윤 겸도 따라서 엄지손가락을 들었다.

“굿!”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사과를 한입 더 베어 물었다.

“애플도 굿이옵니다.”

마님이 말했다.

“먹는 데에는 참으로 자신이 있구나.”

“소인은 잘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사람입니다.”

외국인 선생은 이번에는 작은 나무잔을 꺼냈다.

잔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Cup.”

윤 겸은 입 안의 사과를 삼킨 뒤 대답했다.

“갑.”

“Cup.”

“겁.”

선생이 다시 입 모양을 보여주었다.

윤겸은 잔을 노려보았다.

“이 조그마한 잔 하나에 이름이 어찌 이리 많사옵니까? 갑이었다가 겁이었다가.”

마님이 말했다.

“잔은 그대로이고 네 발음이 떠돌고 있는 것이다.”

윤겸은 잔을 손에 들고 천천히 말했다.

“컵.”

선생이 다시 엄지를 들었다.

“Very good.”

윤 겸이 마님을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무슨 뜻이옵니까?”

“아주 잘했다는 뜻이다.”

윤 겸의 어깨가 조금 올라갔다.

“소인이 영어를 배운 지 반나절도 되지 않아 아주 잘하고 있사옵니다.”

“아직 사과와 잔뿐이다.”

“과거 시험도 첫 글자부터 시작하는 법이옵니다.”

마님은 그 말을 듣고 잠시 윤 겸을 바라보았다.

윤 겸은 아무 뜻 없이 한 말이었지만, 마님의 마음에는 오래 남았다.

과거 시험.

지금은 사과 한 알을 영어로 부르는 일에도 온 얼굴을 쓰는 사내였다.

그러나 언젠가 저 입으로 경전을 읽고, 저 손으로 답안을 써 내려갈 날이 올지도 몰랐다.

마님은 그 가능성을 윤 겸보다 먼저 보고 있었다.

윤 겸의 첫 사물 영어

Apple

사과

Cup

잔, 컵

Good
굿
좋은, 잘했어요

수업이 끝날 무렵, 외국인 선생은 윤겸 앞에 사과와 잔을 나란히 놓았다.

그리고 물었다.

“What is this?”

이것은 무엇입니까?

윤 겸은 사과와 잔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둘 중 어느 것을 물으신 것이옵니까?”

선생은 사과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What is this?”

마님이 윤 겸에게 말했다.

“이것이 무엇인지 영어로 대답해 보거라.”

윤 겸은 턱을 들고 자신 있게 말했다.

“This is an apple.”

외국인 선생의 얼굴이 밝아졌다.

“Excellent!”

윤겸은 뜻을 몰랐지만 좋은 말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칭찬은 어느 나라 말로 들어도 얼굴이 먼저 알아들었다.

윤겸은 이번에는 잔을 가리켰다.

“This is a cup.”

선생이 손뼉을 쳤다.

윤 겸도 따라 손뼉을 쳤다.

그리고 마님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영어 수업은 생각보다 흥이 있사옵니다.”

“아까는 사흘 뒤에 시작하자 하지 않았느냐?”

“배움이란 본래 시작하기 전에는 두렵고, 칭찬을 들은 뒤에는 계속하고 싶은 법이옵니다.”

마님이 웃었다.

“그 이치를 벌써 깨달았느냐?”

“소인은 학문보다 칭찬에 재주가 있는 듯하옵니다.”

수업을 마친 외국인 선생은 책을 덮었다.

그리고 다음 수업 때까지 사과와 잔의 영어 이름을 잊지 말라고 당부했다.

윤 겸은 사과를 품 안에 넣었다.

마님이 물었다.

“그것은 왜 챙기느냐?”

“복습을 하기 위함이옵니다.”

“먹으려는 것이 아니고?”

“배 속에 넣어두면 절대 잊지 않을 듯하옵니다.”

외국인 선생이 돌아간 뒤, 마님은 윤 겸에게 영어책 한 권을 내밀었다.

윤 겸은 책을 받아 들며 한숨을 쉬었다.

“오늘은 사과와 잔만 배웠는데, 책은 어찌 이리 두껍사옵니까?”

“그 안에 네가 아직 만나지 못한 말들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 말을 모두 만나야 하옵니까?”

“하루에 하나씩 만나면 된다.”

윤겸은 책장을 조심스럽게 넘겼다.

알아볼 수 없는 영어가 빼곡했다.

어제의 윤 겸이었다면 곧바로 책을 덮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첫 장을 조금 더 오래 바라보았다.

그 안에서 아는 단어 하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한옥 툇마루 앞에서 윤겸이 사과를 한 손에 든 채 영어책 속에서 아는 단어를 발견하고 기뻐하며, 마님이 뒤에서 흐뭇하게 바라보는 장면
모르는 말은 가득했지만, 윤겸의 눈에는 처음으로 아는 단어 하나가 보였다.

 

Apple.

윤겸이 손가락으로 그 단어를 짚었다.

“마님.”

“왜 그러느냐?”

“이 많은 글자 가운데 소인이 아는 것이 하나 있사옵니다.”

“오늘 하나를 알았으니, 내일은 둘이 되겠구나.”

윤 겸은 책과 사과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세상에는 아직 모르는 말이 훨씬 많았다.

그러나 처음으로 모르는 것의 크기보다, 알게 된 하나의 기쁨이 더 크게 느껴졌다.

마님은 그런 윤 겸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You can do it.”

윤 겸이 고개를 들었다.

“무슨 뜻이옵니까?”

“너는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윤 겸은 잠시 마님을 바라보다 책을 품에 안았다.

“마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소인도 조금은 그런 사람인 듯하옵니다.”

그날 윤 겸이 배운 영어는 사과와 잔 뿐이었다.

하지만 마님이 윤 겸에게 가르치고 싶었던 첫 번째 말은 따로 있었다.

네가 무엇을 모르느냐보다,

앞으로 무엇을 배울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말.

아직 윤 겸은 그 문장을 영어로 말하지 못했다.

다만 책을 품에 안은 자세가 어제보다 조금 반듯해져 있었다.

오늘 마님이 윤 겸에게 건넨 말

You can do it.

유 캔 두잇

Youcandoit

너는 할 수 있다.


쉼표의 호흡 팁
You can을 각각 끊지 말고 유캔으로 가볍게 연결한다.
do it은 두잇처럼 이어 말하고,
상대를 믿어주는 마음을 마지막 말끝에 담는다.


다음 이야기

제5화. 윤겸아, 사과는 먹었느냐

첫 영어 수업을 마친 윤겸에게 복습이라는 시련이 찾아온다.
그런데 윤 겸은 외워야 할 사과를 그날 밤 모두 먹어버리고 만다.

마님: Apple이 무엇이더냐?

윤겸: 어젯밤까지만 해도 소인의 배 속에 있었사옵니다.

마님: 영어를 외우라 했지, 삼키라 하지는 않았다.

매주 수요일과 일요일 오전 8시, 다음 이야기를 대령하겠사옵니다.

오늘 윤 겸이 대령한 영어

Good morning.
좋은 아침입니다.

Repeat after me.
나를 따라 말하세요.

What is this?
이것은 무엇입니까?

This is an apple.
이것은 사과입니다.

This is a cup.
이것은 컵입니다.

You can do it.
너는 할 수 있습니다.

윤겸: 모르는 말이 이리 많은데, 소인이 정말 할 수 있겠사옵니까?

마님: 오늘 하나를 알았으니, 내일은 둘이 되지 않겠느냐.

윤겸: 그러면 백 일이 지나면 소인도 백 마디를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옵니까?

 쉼표 JEONGSEON


#영어공부 #늦깎이영어 #영어초보 #영어말문트기 #생활영어 #영어회화 #사극드라마 #로맨틱사극 #마님과마당쇠 #영어한마당 #윤겸 #첫영어수업 #하루한문장 #쉼표의언어쉼터 #쉼표의서재 #쉼표JEONGSEON #쉼표

쉼표의 서재, 다음 문으로

브런치·뉴스레터·네이버 블로그까지, 쉼표의 모든 공간을 한곳에서 만나요.

쉼표의 모든 공간 둘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