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무 계획도 세우지 않기로 했다.

새해가 시작되면
사람들은 가장 먼저 계획부터 세운다.
올해의 목표, 이번 달의 다짐,
이번 주에 반드시 해내야 할 일들.
그런데 이상하다.
계획이 많아질수록
숨이 조금씩 가빠진다.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날이
왜 이렇게 불안할까.
쉬고 있는데도
어딘가 뒤처지는 기분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오랫동안
계획이 없는 시간을
공백이 아니라
결손으로 배워왔기 때문이다.
아무 계획도 세우지 않은 날은
사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날이 아니다.
그날은
몸이 먼저 말을 걸어오는 날이고,
마음이 뒤늦게 자리를 찾는 날이다.
늦은 점심을 먹고
창가에 앉아
아무 목적 없이 바깥을 바라보는 시간.
우리는 그 시간 동안
무언가를 성취하지는 않지만,
대신 회복이라는 일을 하고 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왜 이렇게 지칠까?”
대부분의 답은
일이 많아서가 아니라
멈출 수 있는 틈이 없어서다.
계획은 앞으로 나아가게 하지만,
쉼은 지금의 나를 붙잡아 준다.
둘 중 하나만 계속하면
사람은 반드시 기운다.
아무 계획도 세우지 않은 날이 필요한 이유는
우리를 느슨하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다시 제대로 걷기 위해서다.
멈추지 않으면
방향이 틀어진 줄도 모른 채
계속 빨라지기만 한다.
새해를 시작하며
꼭 다짐해야 할 말이 있다면
이 말이면 충분하다.
오늘은
아무 계획도 세우지 않아도 된다.
그 하루가
올해를 망치지 않는다.
오히려
올해를 오래 버티게 해 준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오늘 하루만큼은
비워두어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당신을 게으르게 만들지 않는다.
그 시간은
당신을
다시 사람답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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