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말 없는 수요일〉 연작
떠난 자리는 대개 빨리 정리된다.
비워야 할 것 같고, 지워야 할 것 같고, 그래야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아서.
하지만 어떤 자리는 아무 말 없이 그대로 남겨두게 된다.
의자를 옮기지 않고, 컵을 치우지 않고, 그 사람이 앉아 있던 방향을 괜히 바라보게 되는 자리.
누군가에게는 아무 의미 없어 보일지 몰라도, 나는 그 자리를 쉽게 건드릴 수 없었다.
아무 말 없이 남겨둔 자리는 미련이라기보다 습관에 가까웠다.
없어진 것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있었던 시간을 부정하지 않기 위해서.
그 자리에 앉아 무언가를 떠올리진 않았다.
특별한 장면도, 선명한 대화도 굳이 꺼내지 않았다.
다만 그 자리가 아직 비어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했다.
사람은 모든 자리를 채우며 살 수는 없는 것 같다.
어떤 자리는 비어 있어야 다음 계절을 맞이할 수 있고, 어떤 자리는 그대로 남아 있어야 마음이 무너지지 않는다.
아무 말 없이 남겨둔 자리는 시간이 지나도 쉽게 낡지 않았다.
대신 조금씩 다른 의미로 가벼워졌다.
그 사람이 없다는 사실보다, 그 시간을 지나온 내가 거기에 남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 그 자리를 서둘러 치우지 않는다.
언젠가 자연스럽게 다른 자리가 생길 때까지.
아무 말 없이 남겨둔 자리도 지금의 나를 지탱해 주는 하나의 방식이었으니까.
〈아무 말 없는 수요일〉 연작 중
#감성에세이 #아무 말없는 수요일 #남겨둔 자리 #조용한 공백 #쉼표의 글
'쉼표의 서재'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아무 말 없이, 다시 일상으로 (1) | 2025.12.19 |
|---|---|
| 아무 말 없이, 그래도 남은 것 (1) | 2025.12.19 |
| 아무 말 없이 다시 시작된 날 (1) | 2025.12.19 |
| 아무 말 없이 끝나버린 대화 (1) | 2025.12.19 |
| 아무 말 없이 기다리던 시간 (1) | 2025.1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