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말 없는 수요일〉 연작
시작은 항상 거창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무언가를 다시 시작하려면 말이 필요하고, 설명이 필요하고, 서로 고개를 끄덕이는 확신의 순간이 있어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어떤 날의 시작은 아무 말도 없이 조용히 이루어졌다.
끝났다고 믿었던 것들이 어느 날은 끝난 적 없다는 얼굴로 다시 앞에 놓여 있었다.
그날 우리는 다시 만났지만, 예전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고 그 사이의 공백을 굳이 메우려 하지도 않았다.
마치 서로가 잠시 다른 페이지를 읽고 돌아온 것처럼.
아무 말 없이 다시 시작된 날은 조심스러웠다.
괜히 말을 얹으면 이 고요가 깨질 것 같았고, 괜히 의미를 붙이면 부담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는 그저 같은 속도로 걸었고, 같은 방향을 보았고, 굳이 이름 붙이지 않은 채 시간을 나눴다.
나는 그날 알았다.
다시 시작된다는 건 되돌아가는 게 아니라 다르게 머무는 일이라는 걸.
예전과 똑같이 말하지 않아도, 예전만큼 설명하지 않아도, 서로를 아는 방식은 충분히 남아 있다는 걸.
아무 말 없이 시작된 하루는 의외로 단단했다.
불안하지 않았고, 서두르지도 않았고, 무언가를 증명하려 들지도 않았다.
그저 지금 여기서 다시 숨 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했다.
그래서 나는 이런 시작을 믿어보려 한다.
말로 다짐하지 않아도, 약속을 적어두지 않아도, 조용히 이어지는 관계와 천천히 회복되는 마음을.
아무 말 없이 다시 시작된 날은 어쩌면 가장 솔직한 시작일지도 모르니까.
〈아무 말 없는 수요일〉 연작 중
#감성에세이 #아무 말없는 수요일 #다시 시작된 날 #조용한 회복 #쉼표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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