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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표의 서재

오늘을 남기는 사람: 기록 · 언어 · AI · 콘텐츠


마님과 마당쇠의 영어 한마당

마님과 마당쇠가 벌이는 영어 한마당 · 제5화 윤겸아, 사과는 먹었느냐

글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작은 연구실의 쉼표 입니다.

글쓰기와 기록, 그리고 글로 살아가는 구조를 함께 씁니다. 감정을 흘려보내지 않고 문장으로 붙잡아 오래 남는 글을 씁니다.

영어는 머리에 넣으라 했더니, 윤 겸은 배 속에 넣어버렸다


다음 날 아침이었다.

마님이 대청마루에 나오자 윤겸은 이미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어제 받은 영어책은 반듯하게 펼쳐져 있었고, 작은 잔도 그 옆에 놓여 있었다.

자세만 보자면 밤새 학문을 갈고닦은 선비와 다를 바 없었다.

다만 책상 한가운데 놓인 빈 접시가 지나치게 깨끗했다.

마님은 접시를 바라보았다.

윤겸은 마님의 시선을 따라 접시를 보았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영어책을 한 장 넘겼다.

종이 넘기는 소리가 유난히 컸다.

마님이 물었다.

“윤겸아.”

“예, 마님.”

“사과는 먹었느냐?”

윤 겸은 잠시 눈을 감았다.

이미 지나간 사과의 생을 애도하는 사람처럼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먹긴 먹었사옵니다.”

“복습하라고 두었더니 어찌 먹었느냐?”

“소인은 분명 복습을 하였사옵니다.”

“어떻게 하였느냐?”

“한입 베어 물 때마다 ‘애플’을 말하였사옵니다.”

마님이 팔짱을 꼈다.

“그래서 몇 번 말하였느냐?”

“다섯 번쯤 말한 듯하옵니다.”

“사과가 꽤 컸나 보구나.”

“마지막 우딥은 복습보다 식욕이 앞섰사옵니다.”

 

 

 

 

마님은 빈 접시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어제 선생님께서 이 사과를 두고 무엇이라 하셨느냐?”

윤 겸이 자신 있게 대답했다.

“Apple.”

“잘 기억하고 있구나.”

윤 겸의 어깨가 슬며시 올라갔다.

“소인이 말씀드리지 않았사옵니까. 배 속에 넣어두면 잊지 않는다고.”

“그러면 네 배 속에 든 것은 사과더냐, 영어더냐?”

윤 겸은 배를 한번 쓰다듬었다.

“지금은 어느 쪽도 남아 있지 않은 듯하옵니다.”

마님은 웃음을 참으며 영어책을 윤겸 앞으로 밀었다.

“오늘은 어제 배운 말을 다시 확인하겠다.”

윤 겸의 얼굴이 굳었다.

“확인이란 말은 어찌하여 시험보다 부드럽게 들리면서도, 마음은 더 무겁게 만드는 것이옵니까?”

“네가 공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인은 먹으면서 공부하였사옵니다.”

“그것은 공부가 아니라 조식이다.”

오늘 마님이 던진 첫 질문

Where is the apple?

웨어리즈 디 애플?

Whereistheapple

사과가 어디에 있느냐?


쉼표의 호흡 팁
Where is를 한 단어씩 끊지 말고 웨어리즈로 이어 말한다.
the는 약하게 지나가고, 찾고 있는 대상인 apple을 또렷하게 살린다.

마님이 빈 접시를 가리키며 영어로 물었다.

“Where is the apple?”

윤 겸은 접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배를 바라보았다.

다시 마님을 바라보았다.

말하지 않아도 답은 이미 세 사람 사이에 앉아 있었다.

윤 겸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마님께서 사과의 행방을 물으신 것이옵니까?”

“그렇다. 영어로 대답해 보거라.”

“먹었다는 말은 아직 배우지 않았사옵니다.”

“그러니 오늘 배우면 되겠구나.”

마님은 윤 겸의 배를 한번 바라본 뒤 천천히 말했다.

윤겸의 첫 번째 고백

I ate it.

아이 에이릿

Iateit

제가 그것을 먹었습니다.


쉼표의 호흡 팁
ate와 it을 따로 떼지 말고 에이릿처럼 자연스럽게 연결한다.
I는 짧게 시작하고, 먹었다는 사실을 담은 ate에 힘을 준다.

윤 겸이 마님의 입 모양을 따라 했다.

“아이…… 에잇 잇.”

“ate it을 이어 말해보거라.”

“아이 에이릿.”

“그래. 다시.”

윤 겸은 허리를 세우고 빈 접시를 바라보았다.

“I ate it.”

제가 먹었습니다.

마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다.”

윤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영어로 잘못을 고백하니 죄가 조금 가벼워지는 듯하옵니다.”

“말이 달라져도 네가 사과를 먹은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영어는 죄를 숨기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학문이옵니다.”

“처음부터 숨길 생각을 하지 말거라.”

마님은 소반 아래를 손으로 짚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말라붙은 사과 꼭지 하나를 집어 들었다.

윤 겸의 눈이 흔들렸다.

“이것은 무엇이냐?”

“사과의 마지막 흔적이옵니다.”

“네가 몰래 먹었다는 증거이기도 하지.”

윤 겸은 억울하다는 듯 꼭지를 바라보았다.

“사과는 끝까지 소인을 배신하는군요.”

“사과가 아니라 네가 꼭지를 치우지 않은 것이다.”

한옥 대청마루에서 마님이 소반 아래에서 발견한 사과 꼭지를 손끝으로 들어 보이고, 윤겸이 들킨 듯 당황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장면
사과는 사라졌지만, 윤겸의 완전범죄는 꼭지 하나를 넘지 못했다.

 

마님은 사과 꼭지를 빈 접시 위에 내려놓았다.

“이번에는 네가 나에게 물어보거라.”

“무엇을 말이옵니까?”

“사과가 어디 있느냐고.”

윤겸은 마님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Where is the apple?”

마님은 윤 겸의 배를 가리켰다.

“You ate it.”

윤겸의 표정이 밝아졌다.

“마님도 영어로 소인의 잘못을 말씀하시니 조금 덜 무섭사옵니다.”

“그러면 조선말로 다시 말해주랴?”

“영어가 참으로 아름다운 언어이옵니다.”

오늘 윤 겸이 익힌 문장

Where is the apple?
웨어리즈 디 애플?
사과가 어디에 있습니까?

I ate it.
아이 에이릿
제가 그것을 먹었습니다.

You ate it.
 에이릿
당신이 그것을 먹었습니다.

잠시 뒤 마님은 부엌에 사람을 보내 사과 세 개를 새로 가져오게 했다.

윤 겸은 눈을 반짝이며 사과를 바라보았다.

“마님, 오늘도 먹으며 복습하면 되겠사옵니까?”

“오늘은 먹지 말고 세어볼 것이다.”

윤 겸의 눈빛이 금세 흐려졌다.

“사과가 세 개나 있는데 하나도 먹을 수 없다니, 학문의 길은 참으로 가혹하옵니다.”

마님은 사과 하나를 들어 보였다.

“One apple.”

두 개를 나란히 놓았다.

“Two apples.”

세 번째 사과까지 놓았다.

“Three apples.”

윤 겸은 사과를 따라 눈동자를 움직였다.

“하나일 때는 애플인데, 둘이 되니 어찌 애플스가 되는 것이옵니까?”

“여럿이라는 표시로 뒤에 s가 붙는 것이다.”

윤겸은 심각한 얼굴로 사과 세 개를 바라보았다.

“한 개보다 여러 개가 좋다는 표시로 붙는 것이옵니까?”

“좋다는 표시가 아니라 많다는 표시다.”

“소인에게는 같은 뜻이옵니다.”

마님은 사과를 하나씩 바구니에 담았다.

“그럼 네가 다시 말해보거라.”

윤겸은 손가락으로 사과를 가리켰다.

“One apple.”

두 번째 사과를 가리켰다.

“Two apples.”

세 번째 사과를 가리키려던 손가락이 잠시 멈췄다.

“마님.”

“왜 그러느냐?”

“세 개를 다 말하면 하나쯤 먹어도 되겠사옵니까?”

“먼저 말해보거라.”

윤겸은 세 번째 사과를 똑바로 가리켰다.

“Three apples.”

“잘했다.”

마님은 사과 하나를 윤 겸에게 건넸다.

윤 겸은 사과를 받자마자 먹지 않았다.

어제와 달리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한참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말했다.

“This is an apple.”

한옥 마당에서 윤겸이 사과 바구니를 품에 안고 사과 하나를 들어 영어를 떠올리며, 마님이 툇마루에서 흐뭇하게 바라보는 장면
어제는 사과가 먼저였지만, 오늘은 영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마님이 웃었다.

“이제 먹어도 된다.”

윤겸은 사과를 한입 베어 물었다.

아삭.

이번에는 먹기 전에 영어가 먼저 나왔다.

작은 변화였지만, 마님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어제의 윤겸은 사과를 보자마자 입부터 열었다.

오늘의 윤겸은 말부터 꺼낸 뒤 사과를 먹었다.

영어가 입에 붙기 시작한 것인지, 먹을 것을 얻는 방법을 배운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다만 윤겸은 전보다 조금 더 자신 있게 말했다.

“마님.”

“말하거라.”

“내일도 먹을 수 있는 영어를 배우면 좋겠사옵니다.”

“내일은 물을 배울 것이다.”

윤겸은 잠시 생각했다.

“영어를 배우다 보면 밥상 하나를 차릴 수도 있겠사옵니다.”

“네 관심은 영어가 아니라 여전히 밥상에 있구나.”

“사람은 좋아하는 것에서부터 배워야 오래가는 법이 아니옵니까?”

마님은 대답하지 않고 미소를 지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어떤 사람은 책으로 세상을 배우고,

어떤 사람은 질문으로 세상을 배우며,

윤겸은 사과를 먹으며 세상을 배우기 시작했다.

오늘의 작은 변화

This is an apple.

디시즈 언 애플

Thisisanapple

이것은 사과입니다.


쉼표의 호흡 팁
This is를 디시즈처럼 한 호흡으로 이어 말한다.
an apple도 끊지 말고 언애플 가깝게 붙여주면 입이 훨씬 편해진다.


다음 이야기

제6화. 윤겸아, 물 한 잔 가져오너라

사과를 졸업한 윤 겸에게 이번에는 물 한 잔이 주어진다.
그러나 물을 가져오라는 말과 물을 마시라는 말을 구별하지 못해 또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다.

마님: Bring me some water.

윤겸: 소인에게 물을 마시라 하신 것이옵니까?

마님: 내가 마실 물을 가져오라는 말이니라.

매주 수요일과 일요일 오전 8시, 다음 이야기를 대령하겠사옵니다.

오늘 윤 겸이 대령한 영어

Where is the apple?
사과가 어디에 있습니까?

I ate it.
제가 그것을 먹었습니다.

You ate it.
당신이 그것을 먹었습니다.

One apple.
사과 한 개.

Two apples.
사과 두 개.

Three apples.
사과 세 개.

This is an apple.
이것은 사과입니다.

윤겸: 영어는 머리에 넣는 것이옵니까, 배 속에 넣는 것이옵니까?

마님: 입으로 익혀 마음에 남기는 것이니라.

윤겸: 그러면 사과는 배 속에 남겨도 되겠사옵니까?

… 쉼표 JEONG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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