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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표의 서재

문장이 머무는 집


이게 인생인가

빌어먹을, 이게 인생인가 EP.1

40년 직장을 떠나 다낭에서 맞이한 3년째의 진실

프롤로그

빌어먹을 인생이라고 욕을 내뱉고서도, 나는 여전히 이 삶을 끝까지 살아보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이다.


어둡고 깊은 검은 텍스처 배경, 빛이 거의 닿지 않는 밤의 표면
인생이 깜깜해 보이는 날에도, 눈은 조금씩 어둠에 적응한다.

빛이 거의 없는 검은 화면 위에 미세한 결이 남아 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 같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어둠에도 층이 있고 방향이 있다.
이 이미지는 답을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길을 잃은 순간의 정직한 상태를 그대로 담아낸다.


 

“빌어먹을.”

다낭에 온 지 3년째 되는 오늘, 새벽 4시. 나는 또다시 이 말을 중얼거린다.

마지막 날.
40년.
14,600일.
350,400시간.

사무실 책상 서랍을 비우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20분이었다. 40년이 20분으로 정리되었다.

명함 몇 장, 볼펜 두 자루, 오래된 달력, 퇴색한 가족사진 한 장. 이게 다였다.

동료들이 커피를 건넸다. “고생하셨어요.”

그들의 눈빛은 위로가 아니라 두려움이었다. 내일의 자기 모습을 보는 것 같은 두려움.

나는 웃으며 말했다. “좋은 일만 있을 거야.”

거짓말이었다.

 

3년

베트남 다낭에 온 지 3년째다.

사람들이 물으면 나는 말한다. “자유롭게 살고 있어요.”

또 거짓말이다.

허무가 찾아온다. 아침에.
공허가 찾아온다. 점심에.
고독이 찾아온다. 저녁에.
외로움이 찾아온다. 밤에.

이 미친 것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괴롭힌다.

“왜 왔어?” 허무가 묻는다.
“여기서 뭐해?” 공허가 묻는다.
“혼자 괜찮아?” 고독이 묻는다.
“후회 안 해?” 외로움이 묻는다.

나는 대답할 수 없다.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통장

퇴직금은 생각보다 빨리 줄어들었다.

3년. 매달 얼마씩 빠져나갔는지 정확히 계산하지 않았다. 무서워서. 계산하면 더 무서워질 것 같아서.

새벽에 잠이 깨면 불안이 찾아온다.

“이러다 바닥나면?”
“한국 돌아가서 뭐 해?”
“이 나이에 누가 쓸까?”

계산을 시작하면 끝이 없다. 그래서 계산을 멈췄다.

버티는 게 아니라 사는 거라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진실

사람들은 내게 묻는다.

“다낭 어때요? 좋죠?”

나는 웃으며 말한다. “좋아요. 자유로워요.”

하지만 진실은 이렇다.

좋을 때도 있다. 바다를 볼 때, 햇살이 따스할 때, 아무 일정 없이 커피를 마실 때.

하지만 힘들 때가 더 많다.

언어가 안 통할 때.
한국 음식이 그리울 때.
가족 생각이 날 때.
친구들 소식을 들을 때.
혼자 밥을 먹을 때.
아무도 없는 방에서 잠들 때.

이게 현실이다.

SNS에 올리는 사진 속 웃음은 1분짜리 연기다. 나머지 23시간 59분은 고독과의 싸움이다.

 

질문

그럼 왜 돌아가지 않느냐고?

돌아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40년 일한 회사는 이미 없다. 내 책상에는 다른 사람이 앉아 있다. 동료들은 각자의 삶을 산다.

집에 돌아가도 나를 기다리는 건 빈방뿐이다.

한국에 있으면 더 외로웠을 것이다.

적어도 여기서는, 내가 선택해서 외로운 것이다.

한국에서는 버려진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 차이가 크다.

 

희망

그래도 희망의 끈은 놓지 않는다.

미친 것 같지만, 나는 여전히 이게 옳은 선택이었다고 믿는다.

자유를 배우고 있다.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자유.
치유받고 있다. 40년의 상처를.
공감을 얻는다.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
삶의 의미를 찾고 있다. 천천히.
존재의 의미를 깨닫는다. 조금씩.

이 과정이 미친 삶이라 해도, 이게 내 삶이다.

 

고백

“빌어먹을 이게 인생인가?”

3년 전에도 물었다. 오늘도 묻는다. 내일도 물을 것이다.

답은 여전히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안다.

이게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는 내 인생이고, 내가 감당하며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라는 것.

인생이 어이없어서 웃는 밤.
그래도 살아 있으니까 웃는다.

 

EP.1 에필로그

이 삶이 아름답다고 말할 생각은 없다. 다만, 도망치지 않고 끝까지 바라보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아직 답은 없지만, 질문을 던질 힘이 남아 있다는 것만으로 나는 오늘도 하루를 살아낸다.


작가의 말

40년의 직장 생활을 정리하고 베트남 다낭으로 왔습니다. 현재 3년째 이곳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 시리즈는 인생 2막을 미화하지 않습니다. 허무, 공허, 고독, 외로움이라는 자유의 대가를 그대로 기록합니다.

그럼에도 이 삶을 선택했고, 지금도 배우고 있습니다. 자유를, 치유를, 의미를.

이 기록이 누군가의 밤에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다음 편 예고

EP.2 — 7개월의 망설임  계획? 없었다., 연줄? 없었다., 한국으로 돌아갈까? 
허무·공허·고독·외로움과 싸우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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