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어의 장벽을 무너뜨리다 —
프롤로그
“Xin chào!” (안녕하세요)
처음 다낭에 왔을 때,
내가 아는 베트남어는 이게 전부였다.
3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베트남어를 못한다.
하지만 대화한다.

완만한 산등선 위에 두 그루의 나무가 나란히 서 있다.
하나는 먼저 자라 깊은 그늘을 만들고, 다른 하나는 그 옆에서 같은 방향으로 자라고 있다.
이 풍경은 시작과 지속, 망설임과 결심이 공존하는 시간을 상징한다.
말하지 않아도 쌓이는 시간, 드러내지 않아도 생기는 두께.
이 이미지는 설명하지 않는 삶, 그러나 분명히 자라고 있는 삶의 표정이다.
언어의 벽
첫 달은 지옥이었다.
“쌀 주세요.”
못 알아듣는다.
“물 한 병.”
못 알아듣는다.
“화장실 어디?”
못 알아듣는다.
40년 동안 한국에서 살면서,
언어로 소통 못 하는 상황을 겪어본 적이 없었다.
처음으로 벙어리가 됐다.
자존심
가장 힘든 건 자존심이었다.
40년 직장 생활.
나름 관리자였다.
회의를 주재했고, 보고서를 검토했고, 의사결정을 했다.
그런 내가,
과일 하나 사면서 손짓 발짓.
택시 타면서 종이에 주소 적어 보여주기.
식당에서 메뉴판 사진 가리키기.
“나 원래 이런 사람 아닌데…”
자존심이 상했다.
던짐
2개월쯤 지났을 때,
깨달았다.
자존심이 뭔데?
여기선 아무도 내가 누구였는지 모른다.
어느 회사 과장이었는지,
어떤 프로젝트를 했는지,
얼마나 일 잘했는지.
아무도 모른다.
아무도 관심 없다.
그냥 나는 외국인일 뿐이다.
그래서 던져버렸다.
40년 쌓아온 자존심.
직함으로 만든 자존감.
쓸데없는 체면.
다 던져버렸다.
나만 알아먹는 언어
그 순간부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말이 안 통하는데 통했다.
“이거!”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알아듣는다.
“얼마?” (돈 세는 시늉)
알아듣는다.
“맛있어!” (엄지 척)
웃는다.
나만 알아먹는 언어가 생겼다.
몸짓, 손짓, 표정, 눈빛.
한국어도 아니고 베트남어도 아닌,
나만의 언어.
눈빛 속의 마음
3개월쯤 지나자,
더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눈빛으로 읽히기 시작했다.
과일 가게 아주머니 눈빛:
“오늘 이거 싱싱해. 먹어봐.”
식당 주인 눈빛:
“또 왔네? 오늘도 이거 먹을 거지?”
이웃 할머니 눈빛:
“잘 지내?”
말은 안 통하는데,
마음은 통했다.
느낌의 대화
그게 뭔지 알았다.
느낌이 느낌을 낳는 거였다.
내가 웃으면, 상대방도 웃는다.
내가 고마워하면, 상대방도 기뻐한다.
내가 당황하면, 상대방이 도와준다.
감정은 감정을 낳는다.
말이 필요 없었다.
번역기도 필요 없었다.
완벽한 문장도 필요 없었다.
느낌만 전하면 됐다.
언어의 새로운 장
한국에서 40년.
나는 “말 잘하는 사람”이었다.
보고서 잘 쓰고,
프레젠테이션 잘하고,
회의 잘 이끌고.
그게 전부였다.
하지만 여기서 3년.
나는 “말 못 하는 사람”이 됐다.
베트남어 못하고,
영어도 서툴고,
문법도 엉망.
그런데 대화한다.
이게 언어의 새로운 장이었다.
말이 아니라 마음으로.
단어가 아니라 느낌으로.
문장이 아니라 눈빛으로.
장벽의 붕괴
“언어의 장벽”이라는 말이 있다.
나는 3년간 그 장벽과 싸웠다.
처음엔 좌절했다. (못 알아들어…)
그다음엔 화났다. (왜 안 통해!)
그다음엔 체념했다. (포기…)
그런데, 장벽이 무너졌다.
아니,
무너뜨렸다.
말로가 아니라 존재로.
언어로가 아니라 감정으로.
완벽함으로 가 아니라 솔직함으로.
가능한가?
“진짜 그게 가능해?”
응, 가능!
오늘 아침,
과일 가게 아주머니가 망고를 건넸다.
“Ngon!” (맛있어!)
나는 베트남어로 “감사합니다”를 모른다.
그냥 두 손 모아 인사했다.
아주머니가 웃었다.
그걸로 충분했다.
오늘 저녁,
식당 주인이 물었다.
뭐라고 하는지 모른다.
나는 그냥 배 만지며 웃었다.
“맛있었어요” 의미.
주인이 웃으며 엄지 척.
그걸로 충분했다.
밤에,
이웃 할머니를 만났다.
긴 말을 했는데 한마디도 못 알아들었다.
나는 그냥 고개 끄덕이며 웃었다.
할머니가 내 어깨를 토닥였다.
그걸로 충분했다.
실존하는 삶
언어가 안 통하는 곳에서 3년.
나는 배웠다.
말보다 중요한 게 있다는 것.
문법보다 중요한 게 있다는 것.
완벽함보다 중요한 게 있다는 것.
그게 뭐냐고?
실존.
여기 있다는 것.
지금 산다는 것.
함께 한다는 것.
그냥 존재하는 것.
어느새
3년이 지난 지금.
나는 여전히 베트남어를 못한다.
하지만,
과일 가게 아주머니는 나를 안다.
식당 주인은 나를 기억한다.
이웃 할머니는 나를 챙긴다.
어느새 나는 이 삶 속에
속한 사람이 됐다.
말이 아니라 존재로.
지랄 같은 삶
솔직히 말하면,
지랄 같은 삶이다.
말 안 통하는 거 답답하다.
혼자 고립되는 느낌 든다.
가끔 미칠 것 같다.
하지만,
이 지랄 같은 삶이,
나에게 선물을 줬다.
말이 아닌 대화.
언어가 아닌 소통.
완벽함이 아닌 진심.
바로 쉼표
나는 쉼표다.
40년 동안 말로 살았다.
3년 동안 말없이 산다.
그런데 더 많이 대화한다.
우~하하!
진짜 그게 가능하냐고?
응, 가능!
언어의 장벽?
무너뜨렸어!
어떻게?
자존심 던지고, 느낌으로 살았어!
작가의 말
3년째 베트남에 살고 있습니다.
아직도 베트남어 못합니다.
하지만 대화합니다.
눈빛으로, 웃음으로, 느낌으로.
처음엔 좌절했습니다.
“말이 안 통하네…”
지금은 깨달았습니다.
“말보다 중요한 게 있구나.”
언어의 장벽은 진짜 장벽이 아니었습니다.
진짜 장벽은 자존심이었습니다.
자존심 던지니, 길이 보였습니다.
느낌으로 사니, 통했습니다.
당신도 언젠가 벽 앞에 설 겁니다.
그때 이 글이 조금이라도 용기가 되길 바랍니다.
벽을 넘는 건 말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다음 편 예고
EP.4 — 공허한 자유
- 허무가 찾아오는 시간 자유로운데 왜 이렇게 공허할까?
#빌어먹을이게 인생인가 #언어의장벽 #다낭3년째#말없는대화 #자존심을던지다 #쉼표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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