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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표의 서재

문장이 머무는 집


이게 인생인가

빌어먹을 이게 인생인가 EP.4

 

허무가 찾아오는 시간

 

하루에도 몇 번씩.

허무가 찾아온다.

 

도와줬다


고달파 보이는 사람이 있었다.

 

삶이 힘들어 보였다.
돈도 없어 보였다.
외로워 보였다.

 

나도 외로웠으니까,
도와줬다.

 

밥 사주고,
돈 빌려주고,
이야기 들어주고.

 

“고맙습니다.” 그는 말했다.
“언니 덕분에 살았어요.” 그는 말했다.

 

그런데.

 

나를 이용해 처먹고 도망갔다.

 

앞과 뒤.
내 앞에서는 태연했다.

 

웃으면서 인사하고,
고맙다고 하고,
언니라고 불렀다.

 

그런데 뒤에서는.

 

험담 작렬.

 

“쉬운 사람이야.”
“또 뜯어먹으면 돼.”
“한국 사람 돈 많잖아.”

 

나중에 다른 사람한테 들었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매일 아침이면 얼굴을 마주했다. 

 

커피 마시고,
밥 먹고,
이야기 나누고.

 

안다고 생각했다.

 

“이 친구는 착해.”
“힘들지만 정직해.”
“나랑 통해.”

 

전혀 아니었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너는 너.
나는 나.

 

도로 남이다.


이기적인 삶.
여기 사람들은 이기적이다.

 

문화 차이라고?

 

아니다.

 

문화 차이가 아니라

생각 DNA 자체가 다르다.

 

한국 사람:
“내가 힘들어도 남 도와주자.”

 

여기 사람:
“남이 힘들면?
내가 이용하자.”

 

삶의 패턴 자체가 다르다.


이해심.
이해심이 전혀 없다.

 

내가 힘들다고 말하면:
“그래서? 나도 힘들어.”

 

내가 외롭다고 말하면:
“그래서? 돈 있어?”

 

내가 도와달라고 하면:
“그래서? 나한테 뭐 줄 건데?”

 

이해가 아니라 계산이다.


놀부심보.
내 것도 내 것.
니 것도 내 것.

 

내가 밥 사주면:
“고마워. 다음엔 내가 살게.”

 

다음에 만나면:
“언니, 오늘도 언니가 사는 거지?”

 

내가 돈 빌려주면:
“고마워. 곧 갚을게요.”

 

몇 달 지나도:
“아, 그거? 잊었네.
조금만 더 기다려요.”

 

갚을 생각이 없다.


속내.
속내를 보이지 않는다.

 

웃는 얼굴 뒤에 뭐가 있는지 모른다.
고맙다는 말 뒤에 뭐가 있는지 모른다.
언니라는 말 뒤에 뭐가 있는지 모른다.

 

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물속에 잠수하고 있는 느낌이다.

 

아니.

늪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형상.

 

발버둥 치면 칠수록 더 깊이 빠진다.

 

손을 내밀어도 아무도 안 잡아준다.
소리쳐도 아무도 안 듣는다.

 

이게 여기 삶이다.


그래서 허무가 찾아온다.

 

아침에 눈 뜨면:
“오늘도 누구 믿고 살지?”

 

점심 먹으면서:
“왜 이렇게 사는 거지?”

 

저녁에 혼자 앉아서:
“뭐 하러 여기 왔지?”

 

밤에 잠들기 전:
“이게 맞나?”

 

하루에도 몇 번씩.


고립.

 

그래서 점점 고립된다.

 

사람 만나기 싫어진다.
도와주기 싫어진다.
믿고 싶지 않아 진다.

 

혼자가 편하다.
혼자가 안전하다.
혼자면 상처 안 받는다.

 

허무 속에서 혼자 산다.


문화?

 

“문화 차이예요.”

 

아니다.

 

DNA가 다르다.

 

한국에서 40년 살면서 배운 것:
“사람은 기본적으로 선하다.”

 

여기서 3년 살면서 배운 것:
“사람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이다.”

 

어느 게 맞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안다.

 

여기서는 내가 틀렸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살아야 한다.

 

배신당해도,
이용당해도,
고립돼도,
허무해도.

 

살아야 한다.

 

왜?

 

한국 돌아가도
똑같을 것 같아서.

 

아니,
더 힘들 것 같아서.

 

적어도 여기서는,
내가 선택해서 허무한 거니까.

 

이게 다낭 3년째 삶이다.

작가의 말

3년 동안 여러 번 배신당했습니다.

 

도와준 사람한테.
믿었던 사람한테.
친구라고 생각한 사람한테.

 

“문화 차이예요”라고들 하지만,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DNA가 다릅니다.
생각 자체가 다릅니다.

 

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속내를 절대 보여주지 않습니다.

 

늪에 빠진 것 같습니다.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허무가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옵니다.

 

그럼에도 살아갑니다.

 

왜냐고요?

 

한국 돌아가도 똑같을 것 같아서요.

다음 편 예고

EP.5 ― 공허한 자유

자유로운데,
왜 이렇게 공허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