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늘 고요했지만, 그 고요 속에서 언어는 살아 있었다.
종이 위의 침묵은 공허가 아니라 기다림이었다.
나는 쓰지 못한 말들을 떠올리며, 한참 동안 펜을 들지 못했다.
하지만 마음속 어딘가에서 한 문장이 조용히 속삭였다.
"괜찮아, 아직 쓰이지 않았을 뿐이야."
그 문장은 어둠 속에서 자라났다.
낮의 말들이 닿지 못한 깊은 자리에서,
조용히 자신만의 리듬을 만들었다.
모든 빛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건 오직 단어의 온기였다.
나는 그 온기를 따라 한 문장을 썼다.
단어 하나하나가 심장처럼 뛰고 있었다.
지워지고, 다시 쓰이고, 다시 깨어나는 언어들.
그 속에서 나는 내 마음의 소리를 들었다.
빛보다 느리지만, 더 멀리 닿는 속도를.
새벽이 다가오자 종이 위에는 문장들이 누워 있었다.
그들은 마치 긴 꿈을 꾸다 깨어난 듯했다.
어둠이 걶히자, 남은 것은 단 한 문장뿐이었다.
"너는 이 밤을 건너왔다."
그 문장은 나를 위로했다.
그 말 한 줄로 나는 다시 살아났다.
이제 나는 안다.
글은 어둠 속에서 태어나 빛 속으로 나아간다는 걸.
그리고 어떤 문장은, 그 긴 여정을 마치고
밤의 끝에서야 우리에게 다가온다는 걸.
나는 그 문장을 품었다.
지워졌던 언어들이 다시 별빛처럼 피어오를 때,
나는 다시 쓰는 사람이 되었다.
밤의 끝에 남은 한 문장.
그건 결국, 나 자신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