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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표의 서재

오늘을 남기는 사람: 기록 · 언어 · AI · 콘텐츠


마님과 마당쇠의 영어 한마당

마님과 마당쇠가 벌이는 영어 한마당 · 제6화 윤겸아, 물 한 잔 가져오너라

글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작은 연구실의 쉼표 입니다.

글쓰기와 기록, 그리고 글로 살아가는 구조를 함께 씁니다. 감정을 흘려보내지 않고 문장으로 붙잡아 오래 남는 글을 씁니다.

마님은 물을 부탁했고, 윤 겸은 자기 목부터 축였다


아침 햇살이 사랑채 처마 끝에 걸릴 무렵이었다.

윤 겸은 우물가에 쪼그리고 앉아 물동이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어제 사과 세 개를 세며 배운 영어를 잊지 않으려는 참이었다.

“One apple.”

그는 물동이 옆에 놓인 바가지를 하나 들었다.

“One…… 바가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바가지는 아직 영어 이름을 배우지 않았으니, 조선 바가지로 두어야겠구나.”

마침 안채에서 마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윤겸아.”

윤 겸은 벌떡 일어났다.

“예, 마님.”

“물 한 잔 가져오너라.”

윤 겸은 바가지를 든 채 안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제 까지라면 곧장 물을 떠갔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는 영어를 배우는 사람이었다.

영어를 배우는 사람은 조선말로 시킨 일도 괜히 한 번 더 생각했다.

윤 겸은 목을 가다듬고 물었다.

“마님, 영어로 하명하시면 아니 되겠사옵니까?”

잠시 정적이 흘렀다.

마님은 윤 겸이 먼저 영어를 청한 것이 반가웠다.

하지만 그 반가움을 너무 쉽게 드러내면 윤 겸의 어깨가 지붕보다 높아질 것이 분명했다.

마님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Bring me some water.”

물을 좀 가져오너라.

윤겸은 눈을 가늘게 뜨고 문장을 되뇌었다.

“브링…… 미…… 썸…… 워러.”

그는 마지막 단어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워러.”

물이라는 뜻은 알아들었다.

문제는 그 앞의 말들이었다.

윤 겸은 손에 든 바가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자기 목을 한번 만졌다.

“마님께서 소인에게 물을 마시라 하신 것이로구나.”

그는 망설임 없이 바가지에 물을 떠 크게 들이켰다.

꿀꺽, 꿀꺽.

물은 시원했고, 윤 겸은 매우 성실하게 마셨다.

안채에서 기다리던 마님은 한참이 지나도 윤 겸이 오지 않자 직접 우물가로 나왔다.

그리고 빈 바가지를 든 채 입가의 물을 닦고 있는 윤 겸을 발견했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윤겸은 밝게 웃었다.

“마님, 물을 아주 잘 마셨사옵니다.”

아침 햇살이 비치는 한옥 우물가에서 윤겸이 빈 바가지를 들고 입가의 물을 닦으며 만족스러워하고, 마님이 팔짱을 낀 채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장면

마님은 물을 기다렸고, 윤 겸은 부탁받은 물로 제 목부터 축였다.

 

마님이 물었다.

“누가 네게 물을 마시라 하였느냐?”

윤 겸의 웃음이 천천히 사라졌다.

“방금 마님께서 워러라 하지 않으셨사옵니까?”

“물을 가져오라 하였다.”

“가져오라 하신 것이옵니까?”

“그렇다.”

윤 겸은 빈 바가지를 내려다보았다.

“그렇다면 소인의 몸 안으로 가져온 것도 가져온 것이 아니옵니까?”

마님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윤 겸은 그 침묵이 자신의 논리가 몹시 훌륭해서 생긴 것이라 믿고 싶었다.

하지만 마님의 눈썹이 조금씩 올라가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다른 이유인 듯했다.

“윤겸아.”

“예, 마님.”

“내가 마실 물을 가져오라는 말이니라.”

윤 겸은 다시 바가지를 들었다.

“처음부터 그렇게 자세히 말씀하셨다면 소인도 목을 축이지 않았을 것이옵니다.”

“내가 방금 영어로 자세히 말하였다.”

“영어가 자세했을지는 모르오나, 소인의 귀에는 물만 남았사옵니다.”

오늘 마님이 내린 첫 분부

Bring me some water.

브링미 썸 워러

Bringmesomewater

물을 좀 가져다주세요.


쉼표의 호흡 팁
Bring me를 한 단어씩 끊지 말고 브링미로 이어 말한다.
some은 짧고 가볍게 지나가며,
water는 미국식으로 워러에 가깝게 부드럽게 발음한다.

마님은 우물가 옆 작은 평상에 앉았다.

윤 겸은 물동이와 바가지를 들고 그 앞에 섰다.

마님이 말했다.

“오늘은 가져오라는 말과 마시라는 말을 구별해 보자.”

윤 겸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는 마님을 위한 말이고, 하나는 소인을 위한 말이옵니까?”

“그렇게 생각해도 좋다.”

마님은 물 잔을 가리켰다.

“Bring me some water.”

이어 윤 겸을 바라보며 말했다.

“Drink some water.”

윤 겸은 두 문장을 천천히 비교했다.

“브링은 가져오라.”

“그렇다.”

“드링크는 마시라.”

“그렇다.”

윤 겸의 얼굴이 밝아졌다.

“이제 알겠사옵니다.”

“그럼 해보거라.”

마님은 빈 잔을 윤겸 앞으로 내밀었다.

“Bring me some water.”

윤 겸은 잔을 받아 우물가로 갔다.

물을 가득 떠 온 뒤 두 손으로 정중히 내밀었다.

“Here you are.”

마님의 눈이 조금 커졌다.

윤 겸이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어제 영어책에서 보았사옵니다.”

“뜻도 알고 말한 것이냐?”

윤 겸의 미소가 멈췄다.

“대강 좋은 뜻이 아니옵니까?”

“물건을 건네며 ‘여기 있습니다’라는 뜻이다.”

윤 겸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다행이옵니다. 혹시 결혼을 청하는 말이면 어쩌나 잠시 걱정하였사옵니다.”

마님이 잔을 받던 손을 멈췄다.

“왜 그런 걱정을 하였느냐?”

“소인은 뜻도 모르고 마님께 영어를 함부로 드렸으니 말이옵니다.”

마님은 잔을 내려다보았다.

물결이 아주 조금 흔들리고 있었다.

“뜻을 모르는 말은 함부로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예, 마님.”

윤겸은 잠시 망설이다 물었다.

“그런데 결혼을 청하는 영어는 무엇이옵니까?”

마님은 물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오늘 배울 말이 아니다.”

“훗날에는 배우는 것이옵니까?”

“물을 제대로 가져오는 법부터 익히거라.”

윤 겸은 더 묻지 않았지만, 결혼을 청하는 영어가 영어책 몇 쪽에 있는지 궁금해졌다.

물을 건넬 때 쓰는 말

Here you are.

히어 유 

Hereyouare

여기 있습니다.


쉼표의 호흡 팁
Here you를 히어유처럼 부드럽게 연결한다.
are는 길게 끌지 말고 가볍게 마무리하며,
물건을 건네는 손동작과 함께 말하면 훨씬 자연스럽다.

마님은 이번에는 물 잔을 윤 겸에게 건넸다.

“Drink some water.”

윤 겸은 두 손으로 잔을 받아 들었다.

“이번에는 정말 마셔도 되는 것이옵니까?”

“그래.”

“혹시 시험이 숨어 있지는 않사옵니까?”

“물을 마시는 데 무슨 시험이 필요하겠느냐?”

윤겸은 조심스럽게 한 모금 마셨다.

그러고는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I drank water.”

마님은 잠시 놀라 윤 겸을 바라보았다.

“누가 가르쳐주었느냐?”

“어제 사과를 먹고 ‘I ate it’을 배웠으니, 물을 마신 것은 비슷하게 만들면 될 듯하였사옵니다.”

“drink의 지난 말은 drank다.”

윤 겸의 눈이 반짝였다.

“소인이 맞혔사옵니까?”

“그래. 이번에는 맞았다.”

윤 겸은 잔을 들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럼 소인도 영어의 이치를 조금씩 깨닫고 있는 것이옵니까?”

“조금씩.”

“마님께서 ‘조금씩’이라고 말씀하실 때마다 소인의 기쁨도 조금씩 늘어나는 듯하옵니다.”

“처음부터 너무 크게 기뻐하기 때문이다.”

윤겸은 다시 잔에 물을 따랐다.

이번에는 마님 앞으로 가져와 두 손으로 건넸다.

“Here you are.”

마님은 잔을 받았다.

한옥 대청마루에서 윤겸이 물잔을 두 손으로 정중하게 건네고, 마님이 잔을 받으며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장면
물 한 잔을 건네는 사이, 윤겸의 영어는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제대로 닿았다.

 

“Thank you.”

윤겸은 얼른 대답하려 했지만, 배운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영어책을 바라보고, 하늘을 바라보고, 다시 마님을 바라보았다.

“마님께서 고맙다고 하신 것이옵니까?”

“그렇다.”

“그럴 때 소인은 무엇이라 해야 하옵니까?”

마님이 천천히 알려주었다.

“You’re welcome.”

천만에요.

윤 겸이 따라 말했다.

“유어 웰컴.”

“조금 더 이어서.”

“유얼 웰컴.”

“좋다.”

윤 겸은 문장을 몇 번 더 되뇌었다.

그러다 문득 물었다.

“웰컴은 어서 오라는 뜻이 아니옵니까?”

“맞다.”

“그런데 어찌 고맙다는 말에 어서 오라 답하옵니까?”

마님은 잠시 생각했다.

“상대의 고마움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뜻으로 생각하면 된다.”

윤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마님께서 소인에게 고맙다고 하시면, 소인은 그 고마움을 집 안으로 모시는 것이옵니까?”

“네 마음대로 이해하되 뜻은 잊지 말거라.”

윤겸은 웃었다.

“마님의 고마움이라면 매일 모셔도 좋사옵니다.”

마님은 잔을 입가로 가져갔다.

물은 시원했지만 귀 끝은 조금 뜨거워졌다.

오늘 윤 겸이 익힌 물 영어

Bring me some water.
브링미 썸 워러
물을 좀 가져다주세요.

Drink some water.
드링크 썸 워러
물을 좀 마시세요.

Here you are.
히어 유 
여기 있습니다.

Thank you.
땡큐
고맙습니다.

You’re welcome.
유얼 웰컴
천만에요.

오후가 되자 마님은 윤 겸에게 작은 심부름을 하나 더 시켰다.

“사랑채에 계신 영어 선생님께 물을 가져다 드리거라.”

윤 겸은 물주전자와 잔을 챙겼다.

그리고 오늘 배운 문장을 입속으로 여러 번 되뇌었다.

“Here you are.”

“Thank you.”

“You’re welcome.”

사랑채 문을 열자 외국인 선생은 책을 읽고 있었다.

윤 겸은 물잔을 내밀며 말했다.

“Here you are.”

선생이 환하게 웃었다.

“Thank you, Yoon-gyeom.”

윤겸은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You’re welcome.”

세 문장은 짧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았다.

알아듣고, 행동하고, 대답하기까지 윤 겸이 혼자 해냈다.

사랑채 밖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마님은 조용히 미소 지었다.

아침에는 가져오라는 물을 제 목으로 넘겼던 사내였다.

그런데 해가 지기도 전에 누군가에게 물을 건네며 감사의 말까지 주고받았다.

영어는 아직 서툴렀지만,

윤 겸은 이제 말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오가는 것임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었다.

수업을 마치고 돌아온 윤겸은 빈 물주전자를 흔들어 보였다.

“마님, 소인이 물을 한 방울도 마시지 않고 모두 전하였사옵니다.”

“잘했다.”

“선생님께서 Thank you라 하셨고, 소인은 You’re welcome이라 답하였사옵니다.”

“아주 잘했구나.”

윤 겸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마님.”

“말하거라.”

“영어는 참 이상하옵니다.”

“무엇이 이상하냐?”

“아침에는 물 한 잔 때문에 혼이 났는데, 오후에는 같은 물 한 잔으로 칭찬을 받았사옵니다.”

“말을 제대로 알아들었기 때문이다.”

윤 겸은 물주전자를 품에 안았다.

“그렇다면 세상살이도 영어와 비슷한 것이옵니까?”

“어찌하여?”

“누군가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면 물을 마시고도 혼이 나고, 제대로 알아들으면 빈 주전자를 들고도 칭찬을 받으니 말이옵니다.”

마님은 잠시 윤 겸을 바라보았다.

사과를 먹는 일만 생각하던 사람이 어느새 말과 마음의 거리를 헤아리고 있었다.

“그래. 말을 배운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마음이 어디로 향하는지 알아가는 일이기도 하다.”

윤 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소인은 마님의 마음부터 잘 알아듣도록 하겠사옵니다.”

마님이 눈썹을 살짝 올렸다.

“내 마음이 무엇인데?”

윤겸은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우선 물을 가져오라 하시면 마님께 드려야 한다는 것이옵니다.”

마님은 웃음을 터뜨렸다.

윤 겸도 따라 웃었다.

늦은 오후 한옥 마당에서 윤겸이 빈 물주전자를 품에 안고 오늘의 영어 수업을 신나게 이야기하며, 마님이 툇마루에서 따뜻하게 웃으며 바라보는 장면
아침에는 물을 잘못 마셨지만, 저녁의 윤겸은 말 한마디를 제대로 건넬 줄 알게 되었다.

 

그날 윤 겸은 물을 가져오는 법보다 더 중요한 것을 하나 배웠다.

말은 입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제대로 닿았을 때 비로소 제 일을 다한다는 것이었다.

오늘 윤 겸이 완성한 대화

Here you are.
여기 있습니다.

Thank you.
고맙습니다.

You’re welcome.
천만에요.


다음 이야기

제7화. 윤겸아, 문을 열어드리거라

손님이 찾아온 날, 윤 겸은 영어로 문을 열고 자리를 권하는 법을 배운다.
그러나 “Please come in.”을 배운 윤겸은 지나가는 사람마다 집 안으로 불러들이기 시작한다.

마님: Please come in.

윤겸: 들어오시라는 뜻이옵니까?

마님: 손님에게만 하거라. 지나가는 장사꾼까지 부르지는 말고.

매주 수요일과 일요일 오전 8시, 다음 이야기를 대령하겠사옵니다.

오늘 윤 겸이 대령한 영어

Bring me some water.
물을 좀 가져다주세요.

Drink some water.
물을 좀 마시세요.

Here you are.
여기 있습니다.

Thank you.
고맙습니다.

You’re welcome.
천만에요.

I drank water.
저는 물을 마셨습니다.

윤겸: 말을 제대로 알아듣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 일이옵니까?

마님: 어려우니 사람들은 평생 서로의 말을 배우는 것이니라.

윤겸: 그러면 소인은 마님의 말씀부터 평생 배우겠사옵니다.


마님과 윤 겸의 이야기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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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금요일, 바쁘게 지나친 마음을 한 번 돌아보는
**〈쉼표의 편지〉**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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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표의 편지

잠시 멈춰, 마음의 안부를 묻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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