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동안 나는 '버틴다'는 말을 미덕처럼 여기며 살았다. 버티는 사람만이 강한 사람이고, 끝까지 남아 있는 사람이 결국 이긴다고 믿었다. 힘들어도 참고, 아파도 말하지 않고, 마음이 먼저 닳아도 몸이 남아 있는 한 계속 가는 것이 성실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버티는 시간은 길어졌지만, 이상하게도 그 안에서 나는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일을 하는 건지, 일이 나를 끌고 가는 건지 분간하기 어려워졌다.
멈춘다는 선택지는 거의 없었다. 멈추면 뒤처지는 사람이 되었고, 쉬면 책임감 없는 사람이 되었다. 돌아온다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한 번 빠지면 탈락이고, 한 번 쉰 사람은 다시 기회를 얻기 어려웠다. 그래서 사람들은 쓰러질 때까지 버텼고, 무너진 뒤에야 그만두었다. 버티는 과정에서 잃어버린 감각이나 관계, 자신에 대해서는 아무도 책임져주지 않았다.
베트남에서 살며 나는 다른 장면을 보았다. 이곳에서도 사람들은 열심히 산다. 하지만 완전히 무너질 때까지 자신을 몰아붙이지는 않는다. 오늘 컨디션이 안 좋으면 쉬고, 상황이 안 되면 하루를 접는다. 대신 내일 다시 나온다. 돌아올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버티는 사람은 늘 현재를 희생한다. 오늘을 갈아 넣어 내일을 만든다. 반면 돌아오는 사람은 오늘을 지키며 내일을 준비한다. 이 차이는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다. 버티는 삶에서는 실패가 곧 낙오가 되지만, 돌아오는 삶에서는 실패가 잠시의 이탈일 뿐이다.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믿음이 사람을 덜 망가뜨린다.
나는 더 이상 버티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끝까지 남아 있는 사람보다는,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지쳐서 잠시 멈췄다가도, 숨을 고르고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오는 사람. 스스로를 소모하는 대신, 회복시킨 뒤 다시 시작하는 사람. 그것이 약함이 아니라 지속 가능함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나는 지금도 치열하게 산다. 다만 예전과 다른 점은, 오늘의 나를 전부 써버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일의 나를 생각하며 멈출 줄 안다. 예전에는 하루가 끝나면 남는 게 없었다. 지금은 하루를 마치고도 나 자신이 남아 있다.
버티는 사람이 대단해 보이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돌아오는 사람이 더 용감하다고 생각한다. 멈출 수 있는 용기, 회복을 선택하는 용기, 그리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믿음. 그 믿음이 있는 사람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오래간다. 그리고 결국, 자기 삶을 잃지 않는다.
지금 버티고 있는 당신에게 묻고 싶다. 끝까지 버티는 게 정말 답일까, 아니면 잠시 멈췄다가 돌아오는 게 더 나은 선택일까. 돌아올 수 있는 자리를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순간, 삶은 조금 덜 버거워질지도 모른다.
쉼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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