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지 않아도, 사람은 먼저 일한다. 베트남 공장의 하루.

한국을 떠날 때 나는 대단한 결심을 한 사람이 아니었다. 실패를 인정하지 못해 도망친 것도 아니고, 더 큰 기회를 찾아 떠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어느 순간부터 숨이 막혔다.
열심히 일했고, 맡은 일은 끝까지 책임졌고, 기준을 어긴 적도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해가 갈수록 더 빨라져야 했고, 더 완벽해져야 했고, 더 괜찮은 얼굴로 버텨야 했다. 힘들다는 말은 능력이 부족하다는 뜻처럼 취급됐고, 잠깐 멈추는 건 게으름으로 해석됐다. 그렇게 사는 게 당연한 줄 알았다. 다들 그렇게 사니까, 버티는 사람이 결국 살아남는 거라고 배워왔으니까.
베트남에서 일하는 지금, 나는 매일 완벽하지 않은 현장을 마주한다. 일의 속도는 일정하지 않고, 사람은 자주 바뀌며, 계획은 수시로 수정된다. 한국의 기준으로 보면 답답하고 느리며, 어떤 날은 솔직히 엉성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곳에서 분명히 느끼는 게 있다. 이 현장은 완벽하지 않아도, 사람을 먼저 쓰러뜨리지는 않는다. 오늘 일이 안 되면 이유를 찾고, 그 이유가 사람의 한계라면 "오늘은 여기까지"라고 말한다. 그 말은 변명이 아니라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언어다. 내일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오늘을 무너뜨리지 않는 선택, 이곳에서는 그게 자연스럽다.
한국에서는 달랐다. 안 되는 날에도 "그래도 해야지"라는 말이 먼저 나왔다. 사람의 컨디션보다 일정이 앞섰고, 몸보다 결과가 중요했다. 일이 안 되면 구조를 의심하기보다 개인의 태도를 먼저 점검했다. 더 잘했어야 하고, 더 버텼어야 하며, 왜 그 정도밖에 안 되느냐는 질문이 반복됐다. 버티는 사람이 강한 사람이고, 멈추는 사람은 약한 사람이라는 무언의 기준 속에서 많은 이들이 스스로를 소진시켰다.
베트남에서 내가 배운 건 속도가 아니었다. 기술도 아니었다. 가장 크게 배운 건 여백이었다. 안 되는 날을 안 되는 날로 인정하는 태도, 사람을 갈아 넣지 않는 선택. 오늘 힘이 부치면 거기서 멈춘다. 억지로 끝까지 밀어붙이지 않는다. 대신 내일 다시 시작한다. 이 방식은 느린 게 아니다. 무너지지 않는 방식이다. 단기 성과보다 지속을 택하는 구조, 그 안에서 사람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상태로 남는다.
그래서 나는 지금 여기서 일한다. 더 편해서도 아니고, 더 쉬워서도 아니다. 이곳에서는 사람이 먼저 살아 있고, 일은 그다음에 온다. 나는 여전히 치열하게 일한다. 다만 이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사람으로 남은 채로 일하고 있다는 것이다. 숨을 고를 수 있고, 내일을 계산할 수 있으며, 오늘의 실패가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질문 하나만 남기고 싶다. 지금 당신이 버거운 건 정말 당신의 능력 때문일까, 아니면 당신을 계속 갈아 넣는 구조 때문일까. 그 답은 누구의 말에도 있지 않다. 당신이 서 있는 자리 안에 있다. 그리고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기 시작하는 순간, 이미 삶의 방향은 조금 달라지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쉼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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