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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표의 서재

변방에서 쓰는 현장의 기록


쉼표의 기록/쉼표의 서재 일지

쉼표의 서재일지 #3 — 거북이가 500년 살아가는 이유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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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바다 속에서 껍데기가 금빛으로 빛나는 거북이 - 500년의 비밀
느려서 오래 사는 게 아니다. 껍데기 안에 비밀이 있다.


거북이가 500년을 산다고 한다.

느려서 오래 사는 거라고들 말한다. 심장이 천천히 뛰어서, 에너지를 아껴 써서, 급하지 않아서. 과학은 그렇게 설명한다.

하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거북이가 500년을 사는 건, 껍데기 안에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 있어서가 아닐까.


바다 깊숙한 곳에서 길러온 한 모금

거북이는 바다 깊숙한 곳으로 간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곳, 빛조차 희미해지는 곳, 소음이 사라지고 고요만 남는 그 깊은 바닥. 거기서 거북이는 물을 마신다. 아무도 더럽히지 않은, 태초의 바닷물.

그 한 모금이 거북이를 500년 살게 하는 게 아닐까.

우리는 매일 무언가를 마신다. 커피, 에너지 드링크, 달달한 음료. 몸을 깨우기 위해, 잠을 쫓기 위해, 하루를 버티기 위해. 마시는 것들이 점점 자극적이 되어간다. 더 진하게, 더 달게, 더 빠르게.

거북이는 다르다. 가장 깊은 곳에서, 가장 깨끗한 것을, 천천히 한 모금.

오늘 아침, 나는 커피 대신 물 한 잔을 마셨다.

별것 아닌 일인데, 이상하게 몸이 다르게 반응했다. 위장이 놀라지 않았다. 머리가 서서히, 자연스럽게 깨어났다. 커피가 "일어나!"라고 소리친다면, 물은 "괜찮아, 천천히"라고 속삭이는 느낌이었다.

거북이가 매일 아침 이런 기분이라면, 500년쯤은 살 만하겠다.


껍데기라는 이름의 방

거북이의 껍데기를 우리는 "등딱지"라고 부른다. 딱딱하고, 무겁고, 투박한 것. 하지만 거북이에게 껍데기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방이다.

비가 오면 들어간다. 바람이 불면 들어간다. 위험하면 들어간다. 그리고 — 그냥 쉬고 싶을 때도 들어간다.

아무도 문을 두드리지 않는다. 알림 소리도 없다. "빨리 나와"라고 재촉하는 사람도 없다. 껍데기 안에서 거북이는 온전히 자기 자신이다.

우리에게도 그런 껍데기가 있었으면 좋겠다.

새벽 5시, 세상이 아직 잠들어 있는 시간. 나는 그 시간이 내 껍데기라고 생각한다. 아무도 깨어 있지 않은 시간, 전화도 메시지도 오지 않는 시간, 오직 나와 빈 화면만 마주하는 시간.

그 시간에 나는 글을 쓴다.

글을 쓰는 시간이 나의 껍데기다. 바깥세상의 소음이 들어오지 않는, 나만의 깊은 바다 같은 곳.


거북이의 금덩어리

어젯밤, 잠들기 전에 엉뚱한 상상을 했다.

거북이가 500년이나 사는 진짜 이유는 — 껍데기 안에 금덩어리를 숨겨두고 있어서가 아닐까? 금으로 만든 음식을 먹고, 금으로 만든 물을 마시고, 금으로 만든 침대에서 자고.

웃기는 상상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거북이의 금덩어리는 진짜 존재한다.

그건 느림이다.

세상은 빠르기를 요구한다. 빨리 성공하고, 빨리 돈 벌고, 빨리 결과를 내라고. 느린 건 뒤처지는 거고, 멈추는 건 실패라고.

거북이는 그런 세상에서 500년을 산다. 빠른 것들은 다 사라지고, 느린 거북이만 남는다.

느림이 금이었다.

토끼는 빨랐지만 잠들었고, 거북이는 느렸지만 도착했다. 이 이야기를 어릴 때는 그냥 동화라고 생각했는데, 50대가 되고 나니 다르게 읽힌다.

나도 느렸다. 브런치 작가가 되는 데 10번이 걸렸다. 블로그를 만들었다가 무너뜨리고 다시 지었다. 전자책 하나 만드는 데 몇 달이 걸렸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그게 내 금덩어리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법

거북이에게서 배우는 건강 비결이 있다면, 아마 이런 게 아닐까.

첫째, 깊은 곳에서 깨끗한 것을 마셔라. 자극적인 것 대신 맑은 것을. 오늘 아침 물 한 잔이 그 시작이다.

둘째, 자신만의 껍데기를 가져라. 세상의 소음에서 벗어나 온전히 나일 수 있는 시간과 공간. 그게 새벽이든, 산책이든, 글쓰기이든.

셋째, 느림을 두려워하지 마라. 느린 건 뒤처지는 게 아니다. 느린 건 오래가는 거다.

넷째, 껍데기 안에 금덩어리를 숨겨라.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보물. 그건 꿈일 수도 있고, 글 한 편일 수도 있고, "포기하지 않겠다"는 다짐일 수도 있다.

거북이는 그렇게 500년을 산다. 바다 깊은 곳에서 물을 마시고, 껍데기 안에서 쉬고, 느리지만 멈추지 않고.


오늘 아침의 물 한 모금

새벽 창가에서 물 한 잔을 마시며 글을 쓰는 여인과 거북이 인형
글을 쓰는 시간이 나의 껍데기다.

 

나는 오늘 아침, 커피 대신 물을 마셨다.

거북이를 흉내 낸 건 아니다. 그냥 — 몸이 원하는 걸 따랐을 뿐이다. 어제 하루가 너무 빽빽했고, 오늘 아침은 좀 고요하게 시작하고 싶었다.

물 한 잔을 마시면서 생각했다. 거북이가 바다 깊은 곳에서 물을 마실 때, 이런 기분일까. 급하지 않고, 조용하고, 맑은.

이 글도 그렇게 쓰고 싶었다. 급하지 않게, 조용하게, 맑게.

거북이처럼, 느리지만 멈추지 않으면 된다.

일출 해변에서 바다를 향해 천천히 걸어가는 거북이
껍데기 안에 숨겨둔 나의 금덩어리는, 바로 이 문장들이다.

 

오늘도 한 줄을 쓴다. 내일도 한 줄을 쓸 것이다. 그 한 줄들이 쌓이면, 언젠가 500년은 아니더라도 — 오래도록 남는 무언가가 될 거라고 믿는다.

껍데기 안에 숨겨둔 나의 금덩어리는, 바로 이 문장들이다.

쉼표 로고와 새벽 바다 위 떠오르는 태양 상징 이미지

나는 멈추지 않는다. 쉼표 하나를 놓을 뿐이다.


쉼표의 서재 일지 매일 새벽, 눈을 감아야 보이는 세계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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