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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표의 서재

오늘을 남기는 사람: 기록 · 언어 · AI · 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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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표의 서재일지 #5 — 땀이 먼저 글을 쓴다 오늘도 땀을 흘렸다.아침에 눈을 떴을 때부터 이미 공기가 무거웠다. 베트남의 4월은 봄이 아니다. 계절이 따로 없다. 그냥 덥거나, 더 덥거나, 아니면 비가 쏟아지거나. 요즘은 그 세 가지가 하루 안에 다 일어난다.습도가 높으면 생각도 눅눅해진다는 걸 이곳에 살면서 알았다. 노트북을 켜도 손가락이 무겁고, 단어 하나를 꺼내는 데 평소보다 힘이 더 든다. 에어컨을 틀면 조금 낫지만, 그것도 잠시다. 문을 열면 다시 열기가 밀려온다.그래도 썼다. 기상이변이라는 말을 요즘 자주 듣는다. 뉴스에서도, 사람들 입에서도. 그런데 나는 그 말이 뉴스 속 이야기가 아니라 피부로 느껴지는 일이 됐다. 오전 열 시면 이미 한낮 같고, 그늘 아래 서 있어도 등줄기에 땀이 흐른다.이런 날씨에 글을 쓴다는 게 가끔은 웃기.. 더보기
쉼표의 서재일지 #3 — 거북이가 500년 살아가는 이유는 뭘까? 거북이가 500년을 산다고 한다.느려서 오래 사는 거라고들 말한다. 심장이 천천히 뛰어서, 에너지를 아껴 써서, 급하지 않아서. 과학은 그렇게 설명한다.하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거북이가 500년을 사는 건, 껍데기 안에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 있어서가 아닐까. 바다 깊숙한 곳에서 길러온 한 모금거북이는 바다 깊숙한 곳으로 간다.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곳, 빛조차 희미해지는 곳, 소음이 사라지고 고요만 남는 그 깊은 바닥. 거기서 거북이는 물을 마신다. 아무도 더럽히지 않은, 태초의 바닷물.그 한 모금이 거북이를 500년 살게 하는 게 아닐까.우리는 매일 무언가를 마신다. 커피, 에너지 드링크, 달달한 음료. 몸을 깨우기 위해, 잠을 쫓기 위해, 하루를 버티기 위해. 마시는 것들이 점점 자극적이 되어간.. 더보기
쉼표의 서재일지 #2 - 바다를 바라보는 시간 일요일 아침,나는 땀끼 바닷가로 걸어갔다.아무 계획도 없었고특별히 해야 할 일도 없었다.그저 바다를 한 번 보고 싶었다.바람은 이미 와 있었고파도는 일정한 간격으로조용히 시간을 밀어 올리고 있었다.야자수 아래 벤치가아무도 앉지 않은 채 놓여 있었다.나는 그 벤치가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잠시 앉아 바다를 바라봤다.아무것도 하지 않고그저 바라보는 시간.그 시간은 생각보다 길었고생각보다 편안했다.멀리 작은 배 하나가바다 위에 떠 있었다.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지만분명히 방향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었다.나는 그 배를 보며 생각했다. 서두르지 않아도방향만 있다면결국 어딘가에 닿게 된다는 것을.파도는 계속 밀려왔고바람은 계속 불었고나는 잠시 멈춰 있었다.하지만 멈춰 있는 시간이나를 뒤처지게 만드는 건 아니었다.. 더보기
쉼표의 서재일지 #1-열리는 아침 앞에서 오늘 아침은 소리가 먼저 왔다.창문 밖 바나나 잎이 바람에 흔들리고,종달새는 째재잭 째재잭조용히 하루의 문을 두드렸다.나는 잠시 창문을 열었다.그리고 그곳에서작은 시간의 흐름을 보았다.먼저 잎이 흔들리고 있었다.잎은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아침의 방향을 먼저 알고 있는 것 같았다.햇빛을 받으며 조용히 흔들리는 모습이이 하루의 시작을 알려주고 있었다. 쉼표의 아침, 잎이 흔들리다 잠시 뒤, 시선을 조금 옮기자잎 아래에서 작은 꽃이 맺혀 있었다.꽃은 아직 열매가 아니었지만이미 준비된 시간처럼 보였다.보이지 않는 시간들이이렇게 조용히 모여 있었던 것이다. 쉼표의 창문 앞, 씨앗의 시간 그리고 다시 눈을 들었을 때이미 작은 열매가 열려 있었다.나는 언제 이 시간이 지나갔는지알지 못했다.다만 잎이 흔들리고꽃.. 더보기
사진으로 읽는 쉼표의 시간 — 이미지 에세이 무료 배포 이 전자책은 조용한 마음의 순간을 모아 만든 이미지 에세이입니다. 말보다 먼저 다가오는 풍경,생각보다 깊이 남는 여백,그 시간을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무료로 배포합니다. 편하게 받아 가세요. 아래 파일을 클릭하면전체 전자책을 받아볼 수 있습니다.조용한 시간에, 천천히 넘겨보세요 쉼표는 멈춤이 아니라다시 시작하기 위한 숨입니다.이 이미지들이당신의 하루에작은 여백이 되었으면 합니다. 쉼표의 다른 공간도 이어서 만나보세요글, 에세이, 전자책, 일상의 기록이 각각 다른 공간에서 이어집니다. 브런치 글 보기 인스타그램 연결 쉼표의 서재 전자책 보러가기 ✦ ،매주 아침, 쉼표의 서재에서 새 글이 열립니다.천천히, 그러나 멈추지 않고 —함께 걷고 싶다면 구독해 주세요. 구 독 하 기 구독하.. 더보기
인천공항 3번의 게이트 변경, 그리고 다시 서는 마음 집에서 오후 세 시에 나왔다.가방은 가벼웠는데 마음은 조금 무거웠다. 베트남으로 돌아가면 기다리고 있을 일들이 이미 머릿속에서 몇 번이고 재생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 일은 시작도 안 했는데, 피로가 먼저 도착해 있는 느낌. 그래서 솔직히 말하면 가기 싫었다.인천공항에 도착하고, 286번 게이트를 찾아가야 했다. 그런데 268번을 286번으로 잘못 보고 한참을 시드니행 탑승구 앞에 앉아 있었다. 이상했다. 뭔가 결이 다르다는 느낌. 티켓을 다시 확인했다. 286번. 숫자 두 개 차이로 방향이 완전히 달라졌다.캐리어를 끌고 1500미터를 걸었다. 거의 운동장 몇 바퀴를 도는 거리였다. 도착해서 숨을 고르고 있는데, 방송이 나왔다. 게이트 변경. 249번. 게이트는 바뀌어도 방향은 바뀌지 않는다 또 걸었다.. 더보기
쉼표의 서재 일지– 멈출 줄 아는 사람이 오래 간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조용히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 오늘 나는 한 시간 더 잤다.새벽 다섯 시에 눈을 떴지만,다시 눕는 선택을 했다.예전 같으면그 시간을 아깝다고 생각했을 것이다.뭔가 더 해야 한다고,앞서가야 한다고 스스로를 몰아붙였을 것이다.그런데 오늘은 달랐다.이미 설계해 둔 글이 있었고,예약해 둔 전략이 있었고,공장은 조용히 준비되어 있었다.굳이 더 달리지 않아도 되는 날이었다.나는 예전보다 조금 단단해진 것 같다.예전에는 “계속 움직이는 것”이 성실이라고 믿었다.지금은 “멈출 줄 아는 것”이 전략이라는 걸 안다.구조를 세우는 사람은속도에 취하지 않는다.오늘 아침 공장은 조용했다.작업대는 정리되어 있었고,라인은 멈춰 있었지만이미 준비되어 있었다.나는 그 공간을 보며 생각했다.‘성공은 속도가 아니라 정.. 더보기
버티는 사람이 아니라, 돌아오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한동안 나는 '버틴다'는 말을 미덕처럼 여기며 살았다. 버티는 사람만이 강한 사람이고, 끝까지 남아 있는 사람이 결국 이긴다고 믿었다. 힘들어도 참고, 아파도 말하지 않고, 마음이 먼저 닳아도 몸이 남아 있는 한 계속 가는 것이 성실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버티는 시간은 길어졌지만, 이상하게도 그 안에서 나는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일을 하는 건지, 일이 나를 끌고 가는 건지 분간하기 어려워졌다.멈춘다는 선택지는 거의 없었다. 멈추면 뒤처지는 사람이 되었고, 쉬면 책임감 없는 사람이 되었다. 돌아온다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한 번 빠지면 탈락이고, 한 번 쉰 사람은 다시 기회를 얻기 어려웠다. 그래서 사람들은 쓰러질 때까지 버텼고, 무너진 뒤에야 그만두었다. 버티는 과정에서 잃어버린.. 더보기
한국을 떠난 이유, 베트남에서 배운 것 완벽하지 않아도, 사람은 먼저 일한다. 베트남 공장의 하루. 한국을 떠날 때 나는 대단한 결심을 한 사람이 아니었다. 실패를 인정하지 못해 도망친 것도 아니고, 더 큰 기회를 찾아 떠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어느 순간부터 숨이 막혔다.열심히 일했고, 맡은 일은 끝까지 책임졌고, 기준을 어긴 적도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해가 갈수록 더 빨라져야 했고, 더 완벽해져야 했고, 더 괜찮은 얼굴로 버텨야 했다. 힘들다는 말은 능력이 부족하다는 뜻처럼 취급됐고, 잠깐 멈추는 건 게으름으로 해석됐다. 그렇게 사는 게 당연한 줄 알았다. 다들 그렇게 사니까, 버티는 사람이 결국 살아남는 거라고 배워왔으니까.베트남에서 일하는 지금, 나는 매일 완벽하지 않은 현장을 마주한다. 일의 속도는 일정하지 않고, 사람은 자주.. 더보기
아무도 오지 않는 날에도, 서재는 열어 둔다 아무도 오지 않는 밤에도, 서재의 불은 켜져 있다.가끔은 그런 날이 있다.아무도 문을 두드리지 않고,알림도 울리지 않고,숫자는 조용히 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날.예전 같았으면“오늘은 실패한 날인가”“내가 잘못 가고 있는 건가”스스로를 심문했을지도 모른다.하지만 요즘은 조금 다르다.아무도 오지 않는 날에도서재의 불을 켜 두는 일이얼마나 단단한 선택인지이제는 안다.글을 쓰는 일은사람을 모으는 일이기 전에자리를 지키는 일이다.오늘은 아무도 오지 않았지만내일 누군가는우연히 이 문을 열 수도 있다.그리고 그 우연 하나가그 사람에게는필연이 될지도 모른다.서재라는 건늘 북적여야 의미 있는 곳이 아니다.조용히 앉아숨을 고를 수 있다면그걸로 충분하다.나도 한때는반응이 없으면 글을 접었다.조회수가 오르지 않으면내 마음부터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