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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표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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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말 없이, 그래도 남은 것
〈아무 말 없는 수요일〉 연작말을 많이 하지 않았고, 설명하려 들지도 않았고, 끝까지 꺼내지 않은 문장들도 있었다.그래서 어떤 시간들은 제대로 남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된다.아무 말 없이 지나온 날들에도 분명히 남아 있는 것들이 있다는 걸.함께 걷던 순간, 기다리던 시간, 끝내 이어지지 못한 대화와 다시 시작된 날들.그 모든 장면이 말로 묶이지 않았기에 오히려 흩어지지 않고 마음 안에 남아 있었다.사람은 보통 확실한 말과 분명한 결론을 기억하려 애쓴다.하지만 나는 이제 말해지지 않은 것들이 어떤 방식으로 사람을 지탱하는지도 조금은 알 것 같다.아무 말 없이 남은 것들은 대단하지 않다.추억이라고 부르기엔 조용하고, 교훈이라고 하기엔 애매하다.그저 지금의 내가 이만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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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말 없이 남겨둔 자리
〈아무 말 없는 수요일〉 연작떠난 자리는 대개 빨리 정리된다.비워야 할 것 같고, 지워야 할 것 같고, 그래야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아서.하지만 어떤 자리는 아무 말 없이 그대로 남겨두게 된다.의자를 옮기지 않고, 컵을 치우지 않고, 그 사람이 앉아 있던 방향을 괜히 바라보게 되는 자리.누군가에게는 아무 의미 없어 보일지 몰라도, 나는 그 자리를 쉽게 건드릴 수 없었다.아무 말 없이 남겨둔 자리는 미련이라기보다 습관에 가까웠다.없어진 것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있었던 시간을 부정하지 않기 위해서.그 자리에 앉아 무언가를 떠올리진 않았다.특별한 장면도, 선명한 대화도 굳이 꺼내지 않았다.다만 그 자리가 아직 비어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했다.사람은 모든 자리를 채우며 살 수는 없는 것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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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말 없이 다시 시작된 날
〈아무 말 없는 수요일〉 연작시작은 항상 거창할 거라고 생각했었다.무언가를 다시 시작하려면 말이 필요하고, 설명이 필요하고, 서로 고개를 끄덕이는 확신의 순간이 있어야 할 것 같았다.그런데 어떤 날의 시작은 아무 말도 없이 조용히 이루어졌다.끝났다고 믿었던 것들이 어느 날은 끝난 적 없다는 얼굴로 다시 앞에 놓여 있었다.그날 우리는 다시 만났지만, 예전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고 그 사이의 공백을 굳이 메우려 하지도 않았다.마치 서로가 잠시 다른 페이지를 읽고 돌아온 것처럼.아무 말 없이 다시 시작된 날은 조심스러웠다.괜히 말을 얹으면 이 고요가 깨질 것 같았고, 괜히 의미를 붙이면 부담이 될 것 같았다.그래서 우리는 그저 같은 속도로 걸었고, 같은 방향을 보았고, 굳이 이름 붙이지 않은 채 시간을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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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말 없이 끝나버린 대화
〈아무 말 없는 수요일〉 연작대화는 항상 말로 끝나지 않는다.오히려 가장 많은 대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멈춰버린 순간에 남는다.그날 우리는 분명 같은 자리에 있었고, 같은 방향을 보고 있었는데 말은 끝내 마주치지 못했다.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가 아니라, 어떤 말을 해도 이 침묵을 넘지 못할 것 같아서 서로 입을 다물었다.말은 언제나 타이밍을 요구한다.조금만 빨랐어도, 조금만 늦었어도 다른 문장이 되었을 말들이 그날은 끝내 제때 나오지 않았다.그래서 우리는 대신 고개를 끄덕였고, 짧은 한숨으로 대화를 대신했다.아무 말 없이 끝나버린 대화는 깔끔하지 않다.마침표도 없고, 결론도 없고, 누가 옳았는지도 남지 않는다.다만 말하지 못한 문장들이 시간 속에서 천천히 다른 의미로 가라앉을 뿐이다.나는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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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말 없이 기다리던 시간
〈아무 말 없는 수요일〉 연작기다린다고 해서 항상 무언가가 오는 건 아니었다.그걸 알면서도 나는 종종 아무 말 없이 어떤 시간을 견뎠다.연락을 기다린 건 아니었다. 약속을 정해둔 것도 아니었다.그저 지금은 말하지 않는 게 나은 것 같아서 가만히 두었던 시간.말을 꺼내면 조금은 가벼워질 수 있었을 텐데, 괜히 이 침묵을 흐트러뜨리고 싶지 않았다.기다림은 늘 능숙해지지 않는다.시간이 지날수록 익숙해질 법도 한데, 여전히 어딘가 서툴고 조심스럽다.그래도 나는 안다. 모든 기다림이 불안에서 비롯되는 건 아니라는 걸.어떤 기다림은 상대를 믿어서 생기고, 어떤 기다림은 관계를 아껴서 남는다.말하지 않는 선택이 외면이 아니라 배려가 되는 순간도 있다는 걸 조금씩 알게 되었다.그 시간 동안 나는 자주 아무것도 하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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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말 없이 함께 걷던 순간
〈아무 말 없는 수요일〉 연작말을 하지 않아도 함께 걷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했던 순간이 있다.굳이 무슨 이야기를 꺼내지 않아도, 침묵이 어색하지 않았던 시간.발걸음 소리만 나란히 이어지던 길 위에서 나는 이상하게도 혼자가 아니었다.그날 우리는 같은 속도로 걷고 있었다.누가 먼저 맞추자고 한 것도 아닌데, 서로의 걸음을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나란해졌다.괜히 말을 붙였다가 이 고요를 깨고 싶지 않아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아니,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사람은 가끔 이야기보다 존재를 더 필요로 한다.무슨 생각을 하는지 묻지 않아도, 어디로 가는지 정하지 않아도, 지금 이 길을 함께 걷고 있다는 사실 하나면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다.그 사람은 앞서지도, 뒤처지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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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꽃 향기와 마주 앉은 날
─ 쉼표, 생각의 정원에서시간은 말없이 흐르고, 계절은 늘 제 할 일을 한다.하지만 마음은 가끔 멈춰서, 어떤 향기에 발목을 붙잡힌다.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햇살이 스르륵 기운 오후, 낯익은 골목길을 걷다가 한 송이 보라꽃 앞에 멈춰 섰다.그 꽃은 아무 말 없이 피어 있었고, 나는 아무 말 없이 향기를 들이켰다.“잘 지내고 있니?”속으로만 묻는다. 향기엔 대답이 없지만, 묻는 내 마음이 이미 대답이었다.기억과 향기보라색은 나에게 ‘기억의 빛깔’이다.그중에서도 엄마와 함께 걷던 봄길, 그 골목 어귀에 피어 있던 작은 보라꽃들은 마치 오늘 다시 돌아온 것처럼 선명했다.사람은 잊는 법보다 그리워하는 법을 더 먼저 배우는 생명체인지도 모르겠다.꽃 앞에 앉아 그리움과 대화하는 이 시간이 나는 참 좋다.아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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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말 없이도, 충분한 순간이 있다
그저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 충분했던 순간들오늘은요, 그냥 그렇게 누군가 옆에 있기만 해도 말없이도 충분했던 순간에 대해 말하고 싶어요.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여주는 사람.그 눈빛 하나에 “괜찮아, 너 지금 충분히 잘하고 있어.” 그 말을 다 읽을 수 있던 순간이 있었어요.세상은 말이 너무 많고, 설명하지 않으면 오해받을까 두려운 날도 많은데 정작 진짜 필요한 건 조용히 바라봐주는 한 사람의 시선이었거든요.그날은 조금 울고 있었고, 무릎 위에 두 손을 모은 채 가만히 앉아 있었어요.참 많이 흔들렸던 날이었죠.내 옆에 조용히 앉아 있던 그 사람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어요.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이 조금씩 내려앉기 시작했어요.말보다 먼저 전해지는 다정함이 있어요. 설명보다 더 깊이 닿는 공감이 있어요.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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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벼락 아래 피어난 보라꽃의 향기
그 꽃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앞에서 오래도록 서 있었다.출근길에 매일 지나던 골목이었다. 늘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치던 담벼락 앞에서, 그날은 이상하게 발이 멈췄다.금이 가고 페인트가 벗겨진 오래된 담벼락. 누군가 일부러 손을 댄 적도, 관심을 준 흔적도 없는 자리였다.그 아래에 보랏빛 작은 꽃이 한 송이 피어 있었다.누가 심은 것도 아닌, 마치 스스로 이곳을 선택한 것처럼 조용하고 단단하게.향기는 아주 희미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희미해서 더 또렷하게 기억을 끌어올렸다.다 잊었다고 믿었던 어느 봄날의 냄새. 그날, 그녀가 남기고 간 마지막 인사처럼.기억의 틈왜 하필 그 자리였을까. 왜 하필 그날이었을까.그녀와의 마지막 대화도, 마지막 눈빛도 흐릿해졌는데 담벼락 아래에서 흘리던 그녀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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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어먹을, 이게 인생인가 EP.3
— 언어의 장벽을 무너뜨리다 —프롤로그“Xin chào!” (안녕하세요)처음 다낭에 왔을 때,내가 아는 베트남어는 이게 전부였다.3년이 지난 지금?여전히 베트남어를 못한다.하지만 대화한다.완만한 산등선 위에 두 그루의 나무가 나란히 서 있다.하나는 먼저 자라 깊은 그늘을 만들고, 다른 하나는 그 옆에서 같은 방향으로 자라고 있다.이 풍경은 시작과 지속, 망설임과 결심이 공존하는 시간을 상징한다.말하지 않아도 쌓이는 시간, 드러내지 않아도 생기는 두께.이 이미지는 설명하지 않는 삶, 그러나 분명히 자라고 있는 삶의 표정이다. 언어의 벽첫 달은 지옥이었다.“쌀 주세요.”못 알아듣는다.“물 한 병.”못 알아듣는다.“화장실 어디?”못 알아듣는다.40년 동안 한국에서 살면서,언어로 소통 못 하는 상황을 겪어본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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